미역줄기 1kg을 볶아서 서울로 가는 버스에 탔다. 지난 21일 화요일 12 시 43분 손자 덕둥이가 태어났다. 나는 휴가를 내기 어려운 방과후 강사라 출산일은 가지 못하고 24일 수업을 마치자마자 짐을 챙겨 일산 행신동 아들 집으로 향했다. 출산 이틀째인 22일에는 남편과 제주도 사는 땔이 손자를 보고 왔다. 2박 3일 만에 신생아는 집으로 온 것이다. 짐이랑 산모랑 아들 혼자 수고한 것이 안타깝긴 했다. 42세에 올라 아들을 봤으니 아들은 힘든 것도 모르고 뛰어다녔을 것이다. 무슨! 반찬이 먹고 싶은지 물어보니 미역줄기를 해 달라교 했다. 22일 퇴근해서 미역줄기를 볶고 우엉과 연근을 사 놓은 것이 있어 다듬어 조림반찬을 만들었다. 24일 같이 사는 막내와 내가 가서 신생아를 돌보고 28일 남편과 제주도 딸이 올라와 아기를 본 후 두 딸은 호텔로 가고 남편과 내가 남기로 했다.
베이비시터 역할을 한 것이다. 연휴동안 베이비시터는 오지 않기 때문에 어쨌든 가족이 돌봐야 한다.
모두 가는 산후조리원에 안 가고 집에서 하게된 이유는 배당된 조리원 방이 너무 좁아서 마음에 안들었기 때문이었다. 손목이 너무 아프니 어머니 얼른 오시라고 며느리는 재촉했다. 24일 밤에 도착했을 때에는 막 초유가 돌기 시작하여 젖몸살에 시달리고 있었다. 며느리 가슴은 마치 용광로같이 뜨거워 보였다. 터질 것 같이 부풀고 열이 올랐다. "어머님, 그래도 애기 낳을 때보다는 안 아파요. 어머니는 어떨게 셋이나 낳았어요?"숨가프게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하며 거실과 안방을 밤새 왛다갔다 했대.
아들은 4시간 이상을 차를 타고 왔다고 자라고 했지만 아기가 칭얼대면 자동으로 몸을 일으켰다.
25일 가슴 맛사지를 받고서야 며느리는 숨을 좀 쉬는듯 했다.
아기도 이제야 이뻐보인다고 했다.
신생아 귀저귀 갈기, 우유 먹이기, 처음엔 아들과 며느리가 데워 주거나 타 주면 안고 먹이는 일만 했다. 우유나 짜놓은 초유를 데우는 일은 막내딸이 잘 해 주었으나 28일 언니와 호텔로 가고 나니 내가 알아야해서 며느리. 딸한테 열심히 설명을 들었다. 젖병 전용 볼과 솔, 젖병을 거는 젖병 걸이에 걸어 물기를 조금 뺀 후엔 소독기에 넣어 소독한다. 초유짜는 병과 보관하는 팩도 있다.
분유타는 기계는 정말 편리하다. 60cc를 온도와 농도를 맞춰 버턴 하나만 누르면 된다. 투껑을 잘 닫고 배고프다고 울고 있는 아이에게 물리면 된다. 기저귀도 똑똑하다. 말라있을 땐 노란 줄, 젖으면 파란 줄로 변한다. 먹을 시간이 아닌데 칭얼대면 기저귀를 살핀다. 응가를 했을 땐 수돗물로 씻기고 보습크림을 듬뿤 발라준다. 배꼽 소독도 빼먹지 않는다.
배꼽이 9일만에 떨어졌다. 아이는 좀 편안해했다. 아파트가 안 좋은 점은 거실과 부엌이 붙어있는 점이다. 아들말처럼 며느리는 산후우울증은 없겠으나 조리는 제대로 못할 것 같다. 식구들 식사하는 것도 문제긴 했다. 며느리친정어머니가 해 주신 맑은 육계장과 전복미역국이 있었다. 나는 소고기와 전복을 잔뜩 넣고 진하게 국을 끓였다. 며느리는 미역줄기를 보자마자 한 접시 먹었다. 내가 머문 일주일 내내 미역줄기를 먹었다.
그리고 간식으로 곶감을 주문하여 먹었다. 나도 곶감을 좋아하여 하나씩 꺼내 먹었는데 며느리는 새벽에도 허기를 곶감으로 달랬다. 그래서 곶감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우리 집에서는 최고급 곶감이 말라서 버리기도 했는데. 마트가서도 한 줄 사기도 했으나 남편이 제사때 쓸려고 냉동실에 넣어둔 곶감을 일부 가져온 것도 금방 동이 났디.
제사 태마다 내오는 곶감을 못 먹는 음식처럼 멀리하던 막내딸이 곶감이 저렇게 맛있는 건가 하만서 같이 먹어보니 그야말로 새로운 맛의 발견이라나 하면서 곶감을 챙겨 먹기 시작하였다. 라떼와 먹으먼 더욱 맛있다면서 가방을 챙기는 내게 "곶감 좀 남겨 놓으셨죠?"하면서 냉동실 문을 여는것이다. 이 무슨 변화인지, 아무튼 우리집에서 조상님과 나만 좋아하던 곶감 팬이 한 사람 늘었다. 7개씩 두 줄 할 통인 곶감을 반은 며느리, 반은 딸에게 챙겨준 셈이 되었다. 이제 사랑도 반반씩 나눠야 할 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