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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림 이병주문학관에 가다

by 이점선


나림 이병주 소설 해설 “봄날의 문학 콘스트” 가다

이병주 문학관이 있는 북천은 고향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다. 가까우면서도 자주 못 가보는 곳이기도 하였다. IMF때 학회를 몇 번 열었다. 그 뒤로 전 관장이셨던 최영욱 선생님 현재 이종수 문학관장님 등 문학인들이라 인사를 나누고 지내는 사이여서 편하게 찾게 되었다.

이번 특강 소식은 대학원 때 교수님의 연락 때문이었다. 독서 토론을 몇 년 째 이어오고 있는데 괜찮은 강연이니 한 번 들어보라는 말씀이셨다.

『지리산』은 아이들이 아들이 중 1때. 큰 딸이 초 5학년 때 집에 있었다. 나는 그 때야 학교 교육에서 받은 근대사의 오류를 발견했다. 뿔이 나고 얼굴이 빨간 북한 사람이라고 가르친 찐 이데올로기 소녀가 자신의 생각을 깨고 아나키스트가 된 것이다.

우리 교육은 역사를 왜곡시켰다.

역사 사관은 이긴 자의 기록이라고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겼다고 할 수 있는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신 근본 이유는 민중의 해방이다. 지금 민중이 해방된 시대인가? 총없는 현실은 삶을 점점 척박하게 만들고 점점 사람들을 삶의 밑바닥으로 밀어넣고 있다. 자본을 축적한 사람들은 가난을 이끌고 평생을 몸을 부려야 하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전혀 다른 인류로 본다는 것을 어릴 때도 느꼈고 지금도 사는 건 노동의 연속이다. 나보다 더 어렵게 몸을 써야하는 친구도 많기 때문에 나는 컴퓨터 앞에서 어리광 부리는 호사를 누리는 사람이다. 어머니는 항상 “나보다 처지가 못한 사람을 생각해 보라”고만 하셨다. 처지가 나은 사람처럼 잘 살게 노력하라는 가르침은 한번도 하시지 않으셨다. 타고난 운명대로 살다가 가라는 불교식 인과응보설을 그대로 받고 살아온 탓일 것이다.

그래도 30여년 전 시댁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초등교사 사표를 쓰고 아이 셋을 낳아서 키웠다. 아이 셋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은 요즘 아이들은 못할 짓이지만 당시에도 이런 상황이면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시동생은 이혼을 했는데 시아버님이 시동생 동업 문제롤 잠깐 같이 지내야한다고 하니 바로 이혼하자고 했다. 영어학과를 졸업하고 이혼 뒤 영어교사를 하고 사는 것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덕분에 내가 우리 아이 셋과 조카 두명을 합하여 아이 다섯 명을 삼년간 같이 키운 적도 있다.

그런 상황이 끝나고 나서 나는 독서도 하고 교육방송도 듣고 동네 아줌마들과 영어회화, 컴퓨터를 배우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 중에 『지리산』을 읽게 되었다. 독서량은 별로 없었는데 『지리산』이 들어온 것이다. 시대적 배경과 당시 사람들의 지성과 의식 등이 인상적이었다.

오늘 이병주 문학관에서 다시 이병주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니 다시 읽고 선생님의 세계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정래의 『아리랑』 최명희의 『혼불』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박경리의 대하소설『토지』 등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거의 아이들과 같이 읽었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기독교의 탄생을 이해하게 되었다. 빈민 구제는 늘 황제의 몫이었고 부와 권력을 쥔 사람들의 권리요 의무였다. 역사 공부를 하고 위인전을 읽다보면 베푼 부자와 권력자들은 오래 세상 사람들이 버리지 않았고 자기만 아는 기업이나 세상을 돌보지않는 부자들은 금새 말라갔다.

이제 바쁜 일상을 핑계로 해 보고 싶었던 일을 미루지 말자는 마음이 피어난다. 죽은 듯 말라있던 나무에서 벚꽃들이 터지듯 나의 손끝에서 어떤 글이든 터져 나오길 바라면서 써오던 독사 일기도 다시 이어가고, 독서토론 책도 정성껏 읽고 한국소설 낭송하기도 시작하자. 손자를 키우게 되는 여름부터가 아니라 이 봄부터 한 바닥이라도 좋으니 소리내어 읽자. 손자 앞에서 읽어보자고 했지만 이렇게 억척스럽게 일하느라 글도 안 쓰고 있는 나에게 어린 시절 혼자 집보던 상상쟁이 어린 소녀에게 책을 읽어주자.

이병주 문학관에서 이병주 선생님의 문학세계를 듣고 와서는 내 세계를 둘러보게 된다.

고마운 일이다. 계기가 되고 각성이 된다.

오늘 강연은 나림연구회 회장직을 맡은 전 영산대 교님이신 조광수 선생이셨다. 연대기를 설명해 주셨다. 그 연대기마다 시대적 배경이 달랐고 탄생한 문학작품도 달랐다. 문학 작품은 역시 작가정신이나 작가의 삶이 투영된다. 독서회 사건으로 2년 7개월의 영어생활을 하신 것도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니체와 불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발 자크와 루쉰에 비교될 만한 한국의 작가이시다. 사마천을 닮고자 시대에 화내지 않고 글로써 자신을 묶어두고 계셨던 게 아닌가 싶다.

내 고향은 북천과 가깝다. 어린 시절 제일 큰 고모가 북천에 사셨다. 면장님이던 제일 큰 고모부 집에 가면 무서운 고모의 시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 동생도 사셨다. 그 아들인 아버지의 외사촌도 한참 보고 살았는데 결혼후 나는 친정 친척들과 심지어는 외삼촌과도 연랃 안하고 아이 키우고 직장 다니며 살았다. 이리 살다가 죽을 것인가 하는 회한이 드는 게 사실이다. 책을 읽고 싶으니 이제 읽어야겠다.

그 때 초등학교 5학년이던 딸도 중학교 1학년이던 아들도 『지리산』을 읽었다. 3학년이던 막내딸이 그 때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뒤에는 『지리산』이 우리 집에서 서울 일산으로 옮겨갔으니까 대학 시절이라도 읽었을 것이다. 확인해 보고 안 읽었으면 다시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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