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사람에 대한 기대

붉은 사막, 요르단에서 살아가기 위한 안내서

by Anwar Kim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 감정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단단히 뿌리를 내려버린다. 가끔 차를 타지 않고 암만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생김새 때문인지 예상치 못한 요금을 요구하는 택시 기사나 가게 주인을 만나게 된다. 한 달에 몇 번씩 회사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탈 때면, 내가 요청한 장소가 아닌 엉뚱한 곳에 차를 세우는 기사도 있다. 장을 보기 위해 오갈 때면 내 가방은 항상 여행자들과 다를 바 없다. 집 근처 슈퍼에서 구할 수 없는 이것저것을 사 들고 가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큰 가방까지 메고 있으니 여행자로 오해하는지, 택시 이용 시 미터기에 표시된 요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럴 땐 그저 웃어 넘기기도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경찰에 가자고 말해보는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아, 아예 제대로 된 요금조차 내지 않고 내릴 때도 있다. 택시뿐만 아니라,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도 교묘하게 상술을 부리는 사람을 만나면 어이가 없다. 마음이 평온할 때는 그저 웃고 넘길 수 있는 행동이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엔 그 일이 커다란 쓰나미처럼 내 안을 휩쓸고 지나간다. 그들 입장에선 나를 처음 보는 외국인이라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반응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혼자서 ‘내가 여기서 얼마나 살았는데’라며 어이없어하고, 그 감정을 혼자 곱씹으며 혼자 심각해진다. 아무리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결국 나는 이방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혼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었나 보다. 사실 여행지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모습은 이곳만의 특수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현지에서 생활하고 사람을 대할 때, 나는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 한다. 나와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단히 노력한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는 내가 가진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주기도 하고, 사람들의 행동에 큰 기대를 걸기도 한다.


요르단에서의 첫 직장은 KOICA 해외봉사단원이었다. 봉사단원으로 처음 임지에 도착했을 때, 내게 주어진 첫 임무는 실험 매뉴얼 제작이었다. 그때까지 학교에서 사용되던 매뉴얼은 아랍어로 작성된 오래된 자료였고, 실험실에 있는 장비들의 사용법이 모두 기록되어 있지 않아, 교재에서 빠진 실험은 기기가 있음에도 시행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내가 소속된 토목과의 실험 담당 교수는 실험실에 비치된 장비들에 대한 모든 매뉴얼을 원했다. 매뉴얼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은 대부분 스태프들이 기꺼이 도와주었다. 물론 별로 관심 없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영문으로 된 실험 매뉴얼을 완성해 파일과 인쇄본을 담당 교수에게 전달할 때, ‘이 교재를 통해 더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이 진행되겠지’ 하는 큰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내가 만든 매뉴얼은 결국 사용되지 않았다.

내용은 괜찮지만, 지금까지 가르쳐온 방식이 있기 때문에 쉽게 바꾸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만들었는데, 마치 쓸모없는 일을 한 것 같은 허탈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나에게 호의적이었던 사람들에게 ‘사용하지도 않을 매뉴얼을 왜 만들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고, 은근히 그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현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미워하는 마음이 들다 보니, 점점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되었고, 내 존재에 대해 자문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문제의 본질은 외부 사람이나 환경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는 기대하면서도 겉으로는 기대지 말았어야 했다. 무언가를 전해주고 나면 그다음은 내려놓았어야 했는데, 그런 기본적인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지만, 가끔 안하무인격의 사람을 만나면 다시 그런 감정들이 되살아나, 잠시나마 눈앞에서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소심한 성격 탓에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그 감정을 곱씹는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같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런 생각을 품으면 안 되는데’ 하고 자책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감정이 더 크게 밀려올 때가 많다. 처음에 가졌던 깨달음 덕분에 사람들을 미워하진 않겠지만, 가끔은 소심한 발톱을 드러내는 나를 멈추기 어렵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처럼, 이곳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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