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생각중

by 이소소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었다.

특별하게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이를 낳고서는 이상하게 더욱 튼튼해진 몸이 아픈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진짜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오르는 잡생각이나 꼬리를 물고 싶은 그런 한량 같은 하루가 필요한 날.


육아가 힘들다, 힘들다 하는 말들 중에는 이렇게 내가 꼭 필요한 쉬고 싶은 날에도 쉴 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야 연차나 월차가 있고, 또 주말도 있다지만, 육아는 월차는커녕 연차도 힘들다.


다행히 자영업자인 나는 나태하게도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아이가 어린이집을 간 동안에 오랜만에 쉬어보려고 소파 위에 몸을 맡겼다.

잠을 좀 자고 싶은데, 수년간 깨어있던 몸뚱이는 잘 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잠에 들지 않았다.


눈을 깜빡깜빡, 천장의 무늬만 쳐다보다가

' 아! 빨래 돌려놔야 하는데!' 하고 호닥닥 일어나서 세탁기 버튼을 누르고 다시 누웠다.

어제 먹은 아가 물컵이 굴러다니는 게 보여 다시 일어나 싱크대에 던져놓고 나온다. 아니 나오려다 쌓여있는 설거지거리들이 보인다.

'이것만 해놓고 쉬어야지'

시간의 여유로움 덕분인지 천천히 꼼꼼하게 설거지를 끝내고 나서 다시 소파에 눕는다.


휴대폰 속 짧은 영상들을 보다가 집에서 만드는 감자튀김이 눈에 띈다.

우리 아가는 감튀는 또 환장을 하게 좋아하는데 한번 만들어줘 봐야겠네. 가만있어보자, 전분가루가 있었나?





요상하게 배가 허하더라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로 했으니 점심은 배달시켜 먹어야지, 하고 어플을 켠다.

오, 간만에 연어초밥!

반만 일어나서 대충 배달 온 초밥을 먹고 있으면, 엄마가 보면 등짝이 후끈하겠네 싶은 불량한 자세에 혼자 피식 웃음이 난다.


'띠링띵띵 띠리리링'

아 빨래가 다된 소리에 이건 널어야지,

탁탁 털어 빨래도 널어놓고 나면, 이제서야 식곤증인지 살살 잠이 온다.

아, 근데 이 귀한 쉬는 시간에 잠으로 보내는 게 또 살짝 아깝다.

뉴스니 웹소설이니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다 보니 이제 그분이 오실 시간이 한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40분, 30분, 아 왜 더 잠이 오는지......


거실에 널브러진 장난감들을 대충 담아놓고 소파헤드에 비벼진 머리도 대충 쓱쓱 빗고 아가마중을 나갔다 온다.







" 엄마 오늘은 도겸이가.. 엄마 오늘 캐리뮤직선생님이~"

조잘조잘 떠드는 소리가 오늘따라 몽롱하니 자장가와 비슷하다.


" 엄마 지금 써니잖아 자면 어떡해 일어나~!"

" 엄마 안 자. 엄마 지금 생각 중이야."


되지도 않는 핑계를 웅얼웅얼 얼버무리고, 한쪽 눈만 뜬 채로 티비를 틀어준다.

미디어에 노출 된 아이는 조용히 티비를 보고, 그 새 잠이 들어버렸다.

티비를 틀어줘도 금세 지루해하는 친구라, 잠깐 있다가 깨울 거라 생각했는데 한 시간이나 방해 없이 자고 일어났다.

웬일인지 중간에 깨우거나 보챔이 없었다.

덕분에 푹 잤지만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 라니야 뭐 하고 있었어? 엄마 깨우지."

" 엄마 생각 중이라서 코코멜론 보다가 책 보고, 병원놀이하고 있었어. 엄마 이제 병원놀이 해요. 엄마가 의사 선생님이야-!"


역시 한숨 개운하게 자고 나니 똑소리 나는 의사 선생님 역할도 잘 소화해 낼 수 있었다.

힘내서 저녁도 차리고 아까 봐둔 감자튀김도 성공적으로 만들어 줬다.


쉬고 싶은 하루였고, 진짜로 몸이 쉬었던 시간은 고 잠깐 한 시간, 꿀 같은 낮잠시간이었다.


'어머니가 고단하시니 깨지 않게 조용히 놀아야겠다.'

와 같은 철든 생각은 하지 못하겠지만 이제 아주 조금 키워놨다고 그래도 엄마 쉴 시간을 생각해 준 것 같아서 기특하고 대견스러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 등원준비를 하고, 등원을 시킨 뒤 밀린 집안일을 하고, 씻고 준비해서 가게를 나간다.

하원 시간에 맞춰 부리나케 운전해서 시간 맞춰 아이를 데려와서는 또 남은 집안일을 하고, 저녁을 차린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나서야 오롯이 나의 시간이 생기지만, 고단한 몸은 아이가 잠들기 전에 먼저 잠드는 게 부지기수다.


예전에 요 작은 친구가 없었을 적에는 생각도 하지 못한 타이트한 일정이다.

하지만 아이와, 내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힘을 내서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많은 대한민국의 부모님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계실 거고, 나 역시 아무 불만 없이 이렇게 타이트한 하루를 살아간다.


오늘처럼 이렇게, 잠깐의 휴식과 약간의 나태함으로 내일은 더욱 힘내서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벌고, 더 재밌는 하루를 보낼 힘이 나는 생겼다.


내일은 조금 더 디테일한 의사 선생님 역할을 위해 '슬기로운 의사생활' 딱 한편만 더 보고 자는 나태함을 부려야지.


이전 10화애묘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