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마다 각자의 성장 속도가 다 다르다.
10개월, 11개월에 걷는 아이들도 있고, 돌이 한참 지나서 걷는 아이도 있다.
우리 아이는 어떤 면에서는 남들보다 빠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또 남들보다 한참 느렸다.
존경하는 소아과선생님의 유튜브를 정독하면서, 절대로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수십 번은 들었다. 아는데, 머리로는 아는데 조바심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아이가 돌이 지나고 나서도 한참을 걸으려 하지 않았을 때, 이 조바심은 극에 달했었다.
문제가 있는 걸까, 조치를 늦게 취해서 무엇인가 놓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느낌을 받았고, 아이는 결국 내 피가 다 말라갈 때쯤인 15개월 무렵에 걸었다.
남들보다 늦게 걸었지만, 남들보다 훨씬 오래 뛰고 잘 넘어지지도 않았다. 아직까지 크게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거나 한 적도 없다.
그 때야 우리 아이의 성격이 약간은 겁도 많고, 확실한 때에 움직이기 때문에 조금 느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걷는 문제에 애를 다 태워서 그런지 이제는 웬만한 늦음에는 크게 조바심이 들지 않고 기다려주는 여유가 생겼다.
아니, 생겼다고 생각했다.
올해 4세 반(만 3세 반)에 올라오고 3월, 4월이 다 지나도록 아이는 기저귀를 때지 못했다.
때지 않았다는 말이 정확한 것 같다. 매일 도전하는 '쉬 하기'에서 정말 가끔씩은 성공을 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4월 말, 선생님과의 상담 전화에서는 조금 더 큰 멘붕을 받았었다.
아이는 학기 초에 첫 주는 화장실에서 쉬를 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 기저귀를 때지 못한 친구는 아이와 다른 아이 둘 뿐이라는 것.
할 줄 모르는 게 아니라 할 줄은 아는데 기저귀가 편한 것 같다고 느꼈다.
당장에 팬티를 10장을 더 구매하고 팬티와 친해지기 대작전에 들어갔다. 팬티 가지고 놀기, 머리에 써보기, 기저귀 위에 입어보기 등 할 수 있는 놀이는 다 하며 한 주를 보냈다.
선생님은 이번주 금요일에 반드시 팬티를 입히겠으니 여벌옷과 팬티를 넉넉하게 챙겨달라고 말했다.
뭔가 비장함까지 느껴지는 말에 동화되어 의욕이 불타올랐다.
약속대로 금요일, 하원 후 보니 아이는 정말로 팬티를 입고 하원을 했다. 하지만 집에 오자미자 벗어버리고 기저귀를 찾았다.
뭔가 해결이 될 듯 말듯한 애매하고 답답한 상황.
문득 인스타 어디에서 지나가듯 봤던 내용이 생각났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라니야 너 그거 알아? 크리스마스 전까지 기저귀를 때지 못한 친구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로 휴지를 주신대... 장난감이나 자동차 말고 저기 ~ 저기 있는 거랑 똑같이 생긴 휴지를 주신대!"
라고 말하며 굴러다니는 휴지를 가리켰다.
순간 살짝 흔들리는 동공을 확인하고 속으로는 '먹힌 건가!' 하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반복했다.
"휴지를 받으면 정말 슬프겠다. 그런데 라니는 기저귀를 입고 있으니까 휴지를 받겠네?"
그리고는?
다음 날부터 팬티를 아주 잘 입고 다니는 낮기저귀만 땐 멋진 형아가 되었다.
거짓말 같지만 진짜 실화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에게 퍼피구조대 장난감을 달라고 기도한 아들.
거실 구석 장난감통 위에다가 커다란 주머니와 산타할아버지 목마르실 거라고 가져다 놓은 음료수(는 엄마가 마시고 빈 통만 놔뒀다)를 보며 산타에 아직 진심이라 웃음이 났다.
아빠산타가 기다리던 선물을 몰래 넣어 두었고, 아침에 일어나서 확인할 때의 그 환희 어린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엄마 산타할아버지가 목이 말라서 음료수도 마시고 갔어! 선물도 줬어! "
그렇게 멋진 산타할아버지가 이번 크리스마스에 고작 휴지를 주신다니.....! 휴지라니......!
당장에 팬티를 찾아 입는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아직도 남편과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한참을 웃는다.
" 엄마 나는 이제 형아야! 산타할아버지가 휴지 안 준다고 레고를 줄 거라고 했어!"
휴지를 안 주시는 건 다행인데 레고는 엄마맘인데...
크리스마스 이브날 선물 받겠다고 세팅 해놓은 모습이다
아이들 저마다의 속도가 다른 것은 분명 하나,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을 구분하는 눈도 필요한 것 같다.
안 하려는 친구는 하게끔 도와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자, 이제 밤기저귀는 언제 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