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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누군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송탄역

by nessuno

이어 발걸음을 옮겨 송탄역으로 향한다. 마침 ‘지금 도착하는 열차는 광운대행,

광운대행 열차입니다’의 소리에 맞혀 뛰어가는 여성분, ‘삐’ 카드소리와 함께 쏜살같이 밑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여러 개의 벤치에는 여닐곱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연신 부채질을 해대시는 어르신....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집사람이 어디 친구를 만나고 오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아내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아니면 오늘은 주말이니 인근에 사는 친구를 만나 ‘나 때는 말이야.


요새 젊은 사람들은 끈기가 없어’라며 본인의 전성기가 살아 되돌아온 것처럼 추억을 안주 삼아 순댓국에 소주 한잔을 하려고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를 기다리는 걸까?


그 옆에는 파란색에 형광색의 줄무늬가 들어간 조끼에 파란색 안전모를 쓰고 작업복 차림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고덕 삼성전자 일하는 듯한 40대 중후반의 아저씨가 앉아서 핸드폰 통화를 하고 있다.


오늘은 주말인데 출근을 했었던 것일까? 그럼 오늘은 특근을 하고 일을 마무리한 것일까?

특근을 같이 했던 동료를 기다리는 것일까?


날씨도 덥고 힘들고 하루 종일 반장의 잔소리에 시달렸던 일을 마무리하며 시원하게 맥주 한잔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려고 하는 걸까?


앞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찌이이익’ 삼겹살이 익어가는 소리에 ‘캬아 “하며 시원하게 넘어가는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맥주를 들이키며 오늘의 무사히 버텨냈던 하루를 털어버리며 모습을 떠오르니 나 또한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고인다.


눈을 돌려 입구 쪽으로 향하니 자기 몸의 반이나 되는 여행용 트렁크를 끌고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개찰구로 향하는 외국인, 얼굴에는 미소를 띠며 금발의 파머가 들어간 머리에 연신 손으로 빗어 넘기며 한껏 웃으며 친구와 어디를 여행할지 얘기를 나누는 걸까?


아니면 오산미군기지에서 일을 하고 있는 군인일까? 지금 가고 있는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나도 그의 가방이 되어 같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역 안 대합실에서 도로 앞쪽으로 나왔다.


앞에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4~5대 정차를 하고 있다. 자판기 앞에서 기사님들이 커피를 뽑으며 다른 기사와 이야기 중이다.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도 재미있게 얘기할까? 문득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어제 만난 진상 손님 이야기 일까? 아니면 송탄에서 수원으로 외국인 손님을 태워 하루 일당을 벌은 횡재라며 옆의 기사분에게 자랑하는 중일까?


택시기사님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동네에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 메가커피로 커피를 테이크 아웃 하러 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시원함이 얼굴에 확 들어온다. ‘여기가 파라다이스이구나’ 익숙하게 키오스크로 가서 내가 좋아하는 ‘할메가 커피’를 한잔 주문한다.

주위를 둘러본다. 앞에 커피를 한잔 두고 연인들과 친구들.... 다들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고양이상에 긴 생머리에 쌍꺼풀이 있는 눈매, 오뚝하게 솟아오른 코, 가느다란 입술, 계란형의 얼굴, 빨간색 립스틱으로 단장한 입술로 환하게 웃으며 앞의 남자친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여자, 연인들은 무슨 얘기에 집중하고 있을까?


지난주에 갔다 왔던 여름휴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까? 그때 딩동 소리와 함께 ‘341번 손님, 커피 나왔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재잘거림을 뒤로하고 커피를 들고 나왔다.


평소 아침마다 출근하기 위해 앞만 보며 다니던 길인데 화단 주변으로 꽃이 만발했다. 아침에는 지하철을 놓칠세라 항상 바쁘게 뛰어다니던 길인데 이렇게 고개를 돌려 주위를 한번 보니 작은 정원이 있었다.


거기서 어여쁘게 ‘안녕?’하며 방긋 웃고 있는 빨간색의 봉숭아꽃이다. 불그스름하면서 자주색의 자태가 너무나 이쁘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못 보고 지나치다니... 그 옆으로는 주황색의 황화코스모스가 귀부인의 자태를 뽐내며 피었다.


잠시만 옆을 보면 이렇게 소소한 꽃들과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앞만 보고 살았을까?


‘앞으로는 자주 보자’는 눈인사를 건네고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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