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그리고 10년 우리의 삶은 반복된다.
그 속에서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은 이제 생각조차 하지 않고 머리에 저장된 익숙한 방법을 통해 몸이 반응하듯 출근을 한다.
나의 안정되고 단조로운 생활, 쳇바퀴 도는 듯한 하루 속에서도 정말 나에게도 ‘아무것도 없음’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정작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영화 ‘패터슨’을 통해 본 우리의 삶은 굉장히 단순하고 행복하지도 않으며 평범하다.
그러나, 그런 평범한 삶 속에서도 그저 반복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지만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시가 되고, 영화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래서 주인공은 항상 자신의 삶 속에 느낀 하나를 끄집어 내 시를 쓴다.
어쩌면 행복은 반복되는 일상 속은 그 작은 시하나이다.
앞으로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에서도 내가 가진 생각, 습관, 내가 행동하는 것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나는 오늘 지산동을 걸으며 보고 듣은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들이 나의 또 다른 삶의 방향으로 전환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 모두는 항상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거나 안부를 물을 때 ‘요새 바쁘지? 안 바쁘면 커피 한잔 할래?’등을 친구나 직장 동료등에게 건넨다.
현대를 살아가는 나 또한 직장인, 아빠, 자녀, 독서모임 회원 등 여러 가지 타이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정작 뒤돌아 보면 내가 맞게 살아가고 있는지? 뭐가 중요한지? 뭘 했는지? 등 정말 이 일이 그렇게 바쁘게 처리해야 될 일인지 의문투성이다.
지산동을 거닐며 잠깐의 여유와 햇살 사람들의 재잘거림, 그런 모습 등을 담은 풍경 등, 그리고 내 앞으로 펼쳐지는 하늘 위의 구름과 노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내가 또 이 공간에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바쁘게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는 시간이 아닐지 생각한다.
인디언은 말을 타고 들판을 한참 달리다가 갑자기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왜 멈춰 서서 있냐고 물으면 미처 빨리 달린다고 따라오지 못한 나의 영혼을 기다린다고 한다.
기다림의 미학처럼 집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는 일은 일주일 동안 바쁘게 산다고 미처 따라오지 못한 나의 영혼을 기다리는 작업이 아닐까?
딸 은서와 아들 세윤이와 함께 처음 자전거를 타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올라가던 오르막길, 퇴근길 생각지도 못한 나를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던 아내와의 눈 맞춤 뒤에 저절로 웃음보가 터져버린 송탄역 대합실, 아내와 손을 잡고 걸어가며 지는 해를 보며 꼬~옥 안아주었던 집 앞 도로, 그 모든 것들이 눈을 감으면 주마등처럼 아련히 스쳐가는 흑백 TV처럼 그때의 날씨, 온도, 아내의 머리카락 냄새까지 난 기억하고 있다.
‘사람들은 불행한 기억으로도 살지만 행복한 기억으로도 살아가죠’ 지금은 생각나진 않지만 어느 책에서 본 주인공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우리는 행복한 기억을 간직하면서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갈까?
삶은 힘들고 지치지만 이런 작은 행복감들이 모여 삶을 이루고 추억이 된다는 건 좋은 기억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만 간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하리라 생각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또다시 행복하리라 생각했다. 내가 그리던 삶은 그렇게 되어가고 그렇게 되어있으리라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현실은 장밋빛의 미래가 아니 현실인 것을... 행복함은 어떤 물질, 누군가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내가 느끼고 내게 스며드는 것이다.
내가 자주 다니던 도로 옆 화단에서 발견한 이름 모를 꽃을 발견한 기쁨, 우연히 바라본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 있는 모습, 퇴근 후 내린 지하철에서 맞이한 노을 풍경...
어쩌면 이러한 순간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는지...
내가 오늘 하루 지산동을 다니면 그 풍경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인생과 비슷하다.
어떤 날은 맑게 개인 날도 있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도 있으며 예상치 못한 바람이 부는 날도 있고, 주저앉아서 울고 싶은 날도 가끔은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를, 나의 감정을 , 그때 기분을 나의 캔퍼스인 노트 위에 남겨야 한다.
그런 나의 감정은 슬픔과 분노할 때의 기분만이 아니기에 나 자신 안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된 것이기에 더더욱 소중하다.
이러한 글들이 모여 수년 뒤에 나의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나 자신을 이어가 줄 것이고 내 주변에 사람들이 그 풍경 속으로 모이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집 앞 베란다 풍경이 강이 보이는 집에서 사는 사람도 있고 빌딩 건물숲 사이로 다양한 색의 건물들의 모습이 보이는 집도 있고, 산속의 푸르른 녹색 속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도로의 뷰를 바라보며 가끔 잠자리에서 배달오토바이가 요란스럽게 지나가는 집에 사람도 있다.
각자의 살아가는 집과 풍경은 다 다를지라도 나의 집, 내가 가지고 있는 주변의 공간과 모습 등, 모두에게 어떻게 누리고 살아갈 것인지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을 찾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아마도 각자의 몫이자 삶의 목표, 방향일 것이다.
집을 통해 살아오며 그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겪었던 나는 어쩌면 그 속에서의 추억이 이렇게 나를 이루고 나를 단단하게 일으켜 세우고 나를 버티게 하는 근간이 되지 않았나 싶다.
내가 바라보는 공간이 나만의 것이 아니듯이 모두에게 느껴지는 공간 또한 다른 느낌과 추억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과 세월이 흐르면 같은 공간 속에 있는 나 또한 다른 감정을 느끼고 그 공간을 재해석하며 또 새로운 공간을 찾아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갈 것이다.
나 또한 나의 지산동을 통해 하루 동안의 기억은 오래갈 것이다.
그 기억이 희미해질 때쯤 나는 다시 이 글을 펼쳐보며 그때의 감회에 젖어들 것이다. 이글로 인해 나를 뒤돌아 보는 시간, 나를 알아가고 내 누구인지 생각하는 시간, 또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수많은 날들이 쌓여 그 집과 그 풍경 속에 또 그렇게 나의 story, 나의 history를 남기기 위해 기꺼이 펜을 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