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야후벨’의 ‘안트베르펀’ 그림 앞에서 나도 모르게 멈춰 서게 됐다.
왜 그랬을까? 무의식 중 어떤 고민이 있었을까?
작가의 그림 속, 그 방을 들어가서 수많은 고민 앞에 놓인 고래들 앞에서 어떤 것이 나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와 나를 힘들게 하는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걸까?
어쩌면 그림 앞에서 서 있는 나의 모습이 아닐까? 그것에 대한 해결책은 따로 있을까?
아니면 다시 그 문을 뒤돌아 방문을 닫고 나가야 할까? 담배 한 대를 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오늘 아내에게 회사에 출근한다고 말하며 집을 나섰다.
그러나, 실상은 이렇게 길 위에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탐방을 나온 참이다.
그 고민을 아내에게 말하고 나누면 미안해하고 슬퍼하겠지. 왠지 모를 적막 속에 휩싸여 조용히 위로받고 싶었다.
초록색의 잔디 위에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흔들리는 꽃을 앞에 두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럼 다시 일상 속으로 들어갈 용기도 생기겠지. 그래 그런 나 자신에게 위로하고 위로받고 싶은 날이었다.
항상 아내의 직감은 맞았다. 여자들의 촉이란 놀라울 정도이다.
승진을 위해 더 높은 곳으로 가려고 했다. 아내는 반대를 했다.
‘여보, 여기 우리 얘들이 있는 곳이잖아요. 그리고 당신도 잘해왔잖아.
근데 왜? “ 그렇다 나는 왜 그렇게 좀 더 나은 곳으로 가서 승진을 하려고 거기로 가려고 하는 걸까?
여기는 느려서 아니면 내가 여기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여기 직장에 들어왔다.
들어와서 보니 절차와 과정, 보수적인 집단 문화, 숨이 막혔다.
내가 높은 곳으로 간다면 그곳에서는 내가 뭔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을 품고 이직을 결정했다. 모 아니면 도라면 심정으로...
그러나, 현실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은 비슷비슷했다. 나의 완벽한 패배였다.
집에 돌아와 집사람에게 모든 사실을 얘기했다.
집사람은 괜찮다고 인생 별거 없다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큰소리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 순간 불현듯 머릿속에서 인생의 순간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옛 선조들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행복과 불행은 한 머리카락에서 갈래를 땋듯이 얽히고 설키어 그렇게 엮어져 가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영원히 내가 통제할 수도 통제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그렇듯이 기쁜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니라는 것을.. 놓쳤다고 해서 다 잃은 것은 또 아니라는 것을...
그만큼 잃으면 또다시 온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이 불변의 진리를 잊고 살았나 봅니다.
힘들거나 지치거나 낙담하게 되더라도 나는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또한 지금 마음의 평온함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이 40대 중후반 아직은 내가 어느 곳에 서 있게 될지 모르기에 아직 후회하기에는 아직 좀 이른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