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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

by nessuno

이마

허은실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 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빰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어서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지난주 월, 화는 감기로 인해 열이 나고 목이 따갑고 몸이 떨려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자고 있는데 이마에 찬기운이 느껴져 눈을 뜨니 집사람이 ‘괜찮아? “라고 물으며 이마에 손을 얹고 말없이 수건에 물을 묻혀 이마에 얹어주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이때까지 나는 강하다고 생각하며 여태껏 살아왔는데 이렇게 감기로 인해 집사람의 다른 온도의 손이 나의 이마에 와서 닿으니 세상 모든 것이 스르르 녹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 사람이 곁에 있는 것조차 모르고 살다가 옆에 없으면 그리워졌던 것...


그 물건의 존재 가치를 잊고 살다가 버리고 나면 생각나는 것...


매일 먹는 음식들을 다시 먹을 수 없게 되면 그때서야 간절히 원하게 되는 것...


아주 당연하듯이 잊고 지낸 건 아닐까?


사실 인생의 완벽한 퍼즐 같은 건 완성할 필요가 없다고 그냥 쏟아버려도 된다고..


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피아노 칠 때 빠르게 연주해야 하는 부분, 느리게 연주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나의 일상, 아내와 주변 사람들에게도 너무 빨리도 아니고 느리게도 아닌 그날의 리듬에 맞는 빠르기로 살아가라는 뜻이 아니었는지 되새겨 봅니다. 빠르되 거칠어지지 않게, 느리되 지치지 않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 대꾸해 주지 않아도 깊이 들어주는 사람, 부탁하지 않았어도 먼저 알아서 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내 옆에 있는 아내였는데 네 마음을 다 아는 것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걸 아닐까요?


이처럼 아플 때 집사람의 따뜻한 손길이 다가와 이마에 얹었을 뿐인데 세상 모든 것, 잡념이 없어져버렸다.


그렇다. 사는 건 어쩌면 내가 힘들 때 누군가의 작은 손길 하나, 그것이 나를 일으켜주고 살게 하며 살려는 의지를 만들어 주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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