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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교육 Mar 21. 2021

청심에도 사교육이 꼭 필요한가요?

청심에도 사교육이 꼭 필요한가요?          

사교육이라는 단어는 항상 슬픈 단어이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누구나 한 번씩 사교육을 받아봤지만 내가 사교육을 받아서 성장했다고 말하기가 참 힘든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사실 사교육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이렇게 부정적으로 사용된 것은 정치적인 프레임이 가장 큰 원인이다. 사교육과 공교육을 나누는 기준에서 공간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공교육은 학교에서 진행되는 모든 교육이고 사교육은 그 밖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다. 문제는 누구나 좋은 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고 학교에서도 다양한 교육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다른 교육자, 강사 등을 초청해서 학생들에게 특별한 교육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는 사교육인가, 공교육인가 그 경계선도 모호할뿐더러 사실 사람들이 말하는 사교육은 그냥 TV 등에서 뭔가 대치동 아이들의 슬픈 모습이라는 것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면서 학생 혹은 학부모의 힘들고 지친 인터뷰를 통해서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정말 그렇게 힘들게 하는 일부의 학원과 선생님들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교육이라는 것은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 받는 모든 행위를 말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 내가 별도로 필요하면 그 교육을 찾아서 받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축구를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를 위해서 축구 선수 박지성이 와서 교육을 해준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이는 ‘사교육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사교육의 가장 핵심이라고 인식되고 있는 국영수 교육을 나쁘게만 바라보는 것이 문제이다. 국영수 중심의 공부를 나쁘게 말하지만 국영수만 강조된 현실이 나쁜 것일 뿐 이 공부들은 모든 학력과 학문의 기본적인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공부라는 것은 참 재미있는 것이 수학을 열심히 하면 뇌가 자극이 되면서 뇌의 다양한 학습적 기능이 발전하는 것이다. 다른 과목의 공부도 마찬가지다. 꼭 과목에 대한 공부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비형식적 학습이 여기에 다 포함되는 것이다. 이 모든 뇌의 기능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떤 과제가 나왔을 때 그 과제의 목적을 이해하고 어떤 방법을 활용해서 풀어나갈 것이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해결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능력이 학생들의 다양한 학습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 하나하나가 뇌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역량으로 전환되는지는 아직 우리 인류의 지식으로는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이런 꾸준한 학습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뇌를 자극하고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환경에 적용하면서 생기는 응용력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것일 뿐이다. 청심의 아이들이라고 해서 선행, 사교육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사교육을 받는 것이 나쁘고 숨겨야 하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나한테 필요한 공부를 하고 있는지와 그렇지 않은 지를 구분해야 한다. 내 학습에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면 그것을 배우려고 하는 장소와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보다는 그 사교육 혹은 선행이라고 불리는 것을 그저 엄마의 손에 이끌려서 아무 생각 없이 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그래도 아주 조금이라도 자신의 공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택한 것인지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청심의 학생이라고 반드시 ‘학원을 다닌다, 안 다닌다’, ‘선행을 한다, 안 한다’라는 이런 이분법적인 질문을 떠나서 스스로에게 필요한 학습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학습을 스스로 설계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조율해나가는 과정을 아이가 알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오늘 하루도 지겨운 공부와 숙제에 매달려서 살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영어 하나를 배우는 데 과연 현재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배우는 어휘와 영어 독해 혹은 리스닝, 스피킹의 수준이 특정한 학문의 기초가 되는 수업을 약 40여 분 정도 영어로 수업할 때 알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참 큰 오산일 것이다. 너무 시니컬하게 보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실제로 많은 경험을 하다 보니 나름의 이런 결론을 내려볼 수 있었다.


우리가 미국인으로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영어를 사용하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환경에서라면 초등학교의 교육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하루의 99%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의 내용을 이해하고 알아듣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이 공부를 위해서 스스로 노력하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선택하면서 학원, 과외 수업, 인터넷 강의 등을 찾아 듣는다면 자기주도가 되는 것이고 남에 의해서 이끌려서 한다면 그것은 의미 없는 선행이며 사교육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경험상 공부라는 것이 안 하는 학생에게는 한없이 할 게 없지만 하려는 학생들은 참 많은 것들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 공부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혹자는 자기주도 학습을 잘못 이해해서 정말 혼자서만 책을 보면서 이해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모든 교과목과 공부를 그렇게 하기란 매우 쉽지 않다. 정말 스스로 책만 보면서 공부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중학교 수학의 경우의 수, 확률과 고등학교의 미적분, 기하와 벡터 책을 공부해보면 된다. 맹목적으로 부모가 선택해주는 사교육을 받는 게 아니라 현명하게 자신이 원하는 학습을 디자인하는 데 있어서 사교육을 선택하면서 조율을 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선행과 사교육의 기준이 오히려 더 명확해진다. 선행과 사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뒷 챕터와 연결 지어서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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