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수 없는 존재
딸을 성추행, 성폭행한 아버지.
자식을 학대한 아버지에 대한 기사가 잊을만하면 나온다.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를 봤다.
오래전 영화인데, 분명히 본 것인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처음 본 영화처럼 재미있게 봤다.
분명 재미있게 봤는데 씁쓸한 뒷맛이 남았다.
예전 같으면 남지 않았을 뒷맛이.
선생님들이 학생을 무차별적으로 패는 장면에서
내가 학교 다닐 때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학생은 선생님 앞에서 인권이 없는 존재였기에,
선생님이 성추행해도, 몽둥이로 패도, 뺨을 후려갈겨도, 엎드리게 해 놓고 발로 밟고 다녀도,
어떤 짓을 해도 찍소리 못하고 그저 당해야 했고, 잘못했다고 빌어야만 했었다.
물론 좋은 선생님도 많았지만...
그냥 사회 전체 분위기가 그랬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무슨 짓을 하건, 거의 모든 사람은 학생이 잘못해서라고 생각했다.
물론 잘못도 했지만, 그렇다고 인권을 처참히 짓밟힐만한 잘못을 한 학생은 거의 없었다.
군사부일체.
이 세 부류는 같은 존재이고, 이 분들의 은혜는 같다는 뜻이다.
이것은 오직 백성, 학생, 자식에게만 적용되어 온 것 아닌가 싶다.
임금이 과연 얼마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왔으며,
스승은 학생들에게 얼마나 잘해주었기에
자식에게 헌신하는 대부분의 부모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말인가.
그저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기 위한 말이 아니었나 싶다.
어찌 되었건,
부모는 자녀에게 헌신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대부분의 부모가 그러한데,
그렇지 못한 부모를 만난 자녀는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어찌 보면 유일한 것이 부모라는 존재인데,
단지 그런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핍박을 당하고, 힘든 나날을 보내야 하니
이 얼마나 안타깝고 불쌍하고 마음 아픈 일인가?
아버지 답지 못한,
버러지와 다를 바 없는 아~~버 러 지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최소한 성인이 될 때까지 영문도 모른 체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몸이야 상처가 보이니 그나마 치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자신도 모른 체 쌓여만 갈 것이니,
그 마음을 누가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쌓인 마음의 상처는 치료하기도 힘들다.
성인이 되어 온갖 방법으로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서 괜찮아진 듯싶지만,
어딘가에 깊이 숨어 있다가 불현듯 밀고 올라올 때는
숨이 턱 막히게 된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느닷없이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도 한다.
다시 태어날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괴롭히는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들은
감옥에서 편하게 먹고살게 할 것이 아니라
잠도 재우지 말고 온갖 방법으로 계속 괴롭혀야만 한다.
이들에게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오랫동안 당해 온 아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