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과학적으로는 두 지점 간의 기압차가 생길 때 그 차이에 의한 힘으로 공기가 움직여서 생긴다고 합니다.
'바람은 보이지는 않지만 지나 간 자리에 크든 작든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에 나온 대사입니다.
바람 자체는 보이지 않지만,
흔들리는 머리카락에서, 살에 비벼대는 느낌에서, 어디선가 끓이는 청국장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는 것에서,
내 눈에 보이는 수많은 움직임들 속에서 바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봄의 따스한 바람은 겨우내 얼어있던 몸과 마음을 녹여주고,
여름의 뜨거운 바람은 아이스크림과 수박과 계곡을 찾게 하고,
가을의 선선한 바람은 단풍놀이 하기 딱 좋고,
겨울의 싸늘한 바람은 가족들을 집 안에 옹기종기 모이게 해 주지요.
태풍만 아니라면,
바람은 어느 때의 것이라도 나름대로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도 한평생을 가로지르는 바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항상 좋은 날만 있었으면 좋겠지만,
깜짝 놀랄 정도로 뜨겁게 데이는 일도 많고,
옴짝달싹 못하게 몸과 마음을 움츠려 들게 하는 사건도 많지요.
일어설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바람만 만나지 않는다면,
그래도 평탄한 삶이라 여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도 크든 작든 흔적을 남기고,
호랑이도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는데,
제가 57년간 남겨 온 흔적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보존하고 싶은 흔적보다 지우고 싶은 흔적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남긴 흔적이 누군가를 힘들게 하고, 슬퍼하게 하고, 화나게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세상에 꼭 남겨야 할 흔적은 남겼고,
죽을 때까지 기억 속에 남겨 놓고 싶은 흔적들도 있으니,
그런대로 잘 버텨온 것 같기는 합니다.
이제부터는
지우고 싶은 흔적은 아예 만들지 않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기쁨이 되는 흔적만을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래야,
죽기 직전에,
'잘 살고 간다'라는 유언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우리 함께,
멋진 흔적을 남겨보지 않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