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게인 마이 라이프'를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저녁에 티브이를 보지 않기로 결심 해서, 오전이나 휴일을 이용해서 쿠팡플레이에서 보고 있지요.^^
죽임을 당한 후 다시 생명을 얻어 고등학생 때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데,
미래를 다 기억하고 있는 혜택을 누리며 정의를 실현시켜가는 한 남자의 얘기죠.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생각으로나마 '만약 어떤 날로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일까?'라는 질문을 해봤습니다.
(보글보글 매거진의 이번 주 과제입니다^^)
1986년으로 가고 싶습니다.
집이 가난하여 등록금을 낼 형편이 못되어서 등록금을 전액 면제받을 수 있는 대학교로 하향 지원하였었습니다.
두 살 터울 여동생이 대학교에 진학해야 하는데, 집에서는 저 하나 가르칠 돈도 없었고
당시에는 딸을 대학교에 보내지 않아도 흠이 되지 않았었기에
아버지는 보내 줄 수 없다 하고, 동생은 가겠다고 해서 집이 난리가 났었죠.
고민 끝에 아버지와 거래를 했습니다.
"제가 군 장학금을 신청할 테니, 저에게 줄 돈으로 ㅇㅇ를 대학교에 보내 주십시오"
당시에는 군 장학금 제도가 있었습니다.
받은 연수만큼 군에서 더 복무해주는 조건이었지요.
대신 납부금과 매달 6만 원씩 학비 지원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국가에서는 헐값에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었고, 돈 없는 사람은 은행 빚을 내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제도였습니다.
아버지는 "어차피 돈이 없으니 너는 군 장학금을 받고 ㅇㅇ는 대학교에 가지 않으면 된다"라고 하셨죠.
저는 ㅇㅇ를 대학교에 보내주지 않으면 군 장학금을 받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결국 제가 이겼고, 저는 군 장학금을 신청했습니다.
이 하나의 선택이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줄은 전혀 모른 체...
그때로 돌아가서 군 장학금을 받지 않으렵니다.
제가 받지 않았더라도 동생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대학교에 갔을 것입니다.
아내는 일급 정교사입니다.
대학교 졸업 직후부터 9년 동안 중학교 교사였죠.
아이를 빨리 낳아서 빨리 키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아내는 중학교 교사이고 저는 3학년 올라갈 때, 양가 부모님을 일주일간 설득하여(결혼은 하되 살림은 차리지 않고, 아내는 직장이 있는 친정집에서, 저는 두 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저희 집에서 그대로 지내며 산다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양가에서는 장남 장녀를 결혼시키는 것이었기에 결혼을 시키고 상당액의 이익금이 발생한다는 것을 서류로 만들어 제출했습니다) 당시에도 좀 이른 나이인 26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제 부모님이 진 빚을 갚아야 했고, 살림을 차릴만한 형편이 못되어
결혼 후 8년이나 격주 부부(어떤 때는 한달)를 했습니다.
큰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을 때,
저는 이후로도 9년을 더 군 복무를 해줘야 했기에,
더 이상 가족과 떨어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비록 작은 군 관사이지만 함께 살기로 하고,
아내에게 교사를 그만둘 것을 제안했었지요.
오직 함께 살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부모가 없는 빈 집에 들어오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부모가 지워준 빚을 겨우 갚아서 돈도 없는 가난뱅이 형편에
그 좋은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라고 했고, 아내도 받아들였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장모님께서 돈이고 뭐고 그동안 그만큼 떨어져 살았는데 남편하고 함께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력히 그만둘 것을 종용하셨다고 합니다. 역시 대단하신 분이죠. 저의 강력한 지지자셨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군 장학금을 받지 않고, 차라리 융자를 받아서 학교를 졸업한 후
민간 병원에서 수련을 받으며 매주 가족을 만나고,
수련이 끝난 후 군 병원이나 민간 병원에서 3년간 근무한 후에
아내가 교편을 잡고 있는 곳으로 가서 개원을 할 것입니다.
아내는 참 좋은 교사로 이름을 날렸을 것이고,
양가 부모님을 더 자주 뵐 수 있었을 것이고,
아이들도 양쪽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자주 만나면서 거의 대가족 생활을 했었을 것입니다.
그때로 보내 줄 분 혹시 안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