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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Jan 08. 2021

도대체 누가 아이들을 울리는가

미스 트롯 2

도대체 누가 아이들을 울리는가

미스 트롯이 대 히트를 쳤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 국민가요인 트로트가 인기를 얻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나도 트로트를 좋아한다.


미스 트롯 2가 방영되고 있다.

합격자 발표 때 아이들은 초긴장 상태에 돌입한다.

어쩌자는 것인가?

미래의 트로트 꿈나무를 발굴한다는 취지는 그렇다고 치자.

어차피 세상은 경쟁해야만 하고,

경쟁 속에서 앞서가는 사람과 뒤처지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저 어린아이들에게 저만큼의 긴장감이 정말로 필요하다는 말인가?

나도 이기기 힘들 것이라 여겨질 정도의 긴장감을 정녕 아이들에게 지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 정도는 각오하고 참가했으니 괜찮다는 말인가?


발표가 시작될 때부터 우는 아이들이 있다.

합격을 해도 울고, 떨어져도 운다.

정말 어쩌자는 것인가?

아이들은 우는데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는 어른들은 웃는다

차마 웃는 모습은 여기에 못 올리겠고,

한 사람은 웃지 못하고 표정이 좋지 않다. 어른의 표정이다.

장윤정을 좋아하느냐고 묻지 말기를. 이것은 전혀 상관없는 것이니까.

진짜 어른이라면 최소한 저 정도의 얼굴 표정이 나올만한 감정을 느껴야 한다.

또 한 사람의 어른은 아이들의 마음과 같이 한다.

왜 모두가 마음 아파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마지막 한 명의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발표하는 사람과 사회자와 연출자는 최대한 긴장을 끌어올린다.

저 아이들이 지금 어떤 심정일 지 정녕 모른다는 것인가?

저 착하고 순박한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세상을 즐겨도 될 나이에 있는 아이들이,

왜 저러한 상황에 내몰려야 하는가 말이다.

이게 정말 옳은 일인가?

옳다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무조건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녕 이것이 올바른 어른들의 자세인지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어린아이들을 데려다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아이들이 울 때 함께 울어주지는 못할지언정,

온갖 자막으로 장난질을 치더니 급기야

떨어진 아이들은 대성통곡하고 있고,

합격한 아이도 울고 있는데,

'신이시여'란다.

아무리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보는 티브이에서 이 따위 짓을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인가?

아무리 언론의 자유가 있다 할지라도,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왜 이런 것에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일에 왈가왈부하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인가?


저렇게 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이크에 대고 말한다.

나름 격려차 하는 말이다.

"이제 시작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울어. 여기 올라온 것도 최고로 잘한 거야"

이게 정녕 위로라는 말인가?

시작도 안 했다니. 이미 시작했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데.

왜 우냐니. 이유를 몰라서 물어보는 것도 아닐 터이고, 운다고 핀잔을 주는 것인가?

아이가 울 수밖에 없도록 어른들이 만들어 놓고,

함께 울어주지는 못할지언정 통곡을 하고 있는 아이에게 울지 말라고 하다니.

그러면 아이는 울지도 않고 어떻게 저 상황을 이겨내라는 말인지.

최고로 잘했다고 칭찬하면 아이의 아픔과 슬픔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떨어졌는데, 그래서 슬프고 그동안 고생한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마음이 아픈데,

최고로 잘했다니.

이게 뭔 위로가 되겠는가 말이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도대체 방송국 관계자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이나 해본 적이 있는지.


제발, 어른들 그러지 맙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좌절을 겪는다.

유아도, 어린이들도 저마다의 아픔과 좌절을 겪으면서 자란다.

객관적으로는 경중의 무게가 있을지라도,

겪는 당사자에게는 같은 무게의 고통이다.

굳이 어른들이 여기에 보태주지 않아도 충분할만큼 겪는다.

아이들이 좌절하고 아파할 때 어른들의 한 마디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영향을 끼친다.

누가 어떠한 말을 해주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마음이, 더 나아가 미래가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위로와 칭찬을 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나오는 말이라고 하여 막 하면 안된다.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느냐는 전적으로 어른들에게 달려 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느냐도 지금의 어른들에게 달려 있다.

그러하기에 어른은 어른다운 책임감을 가져야만 한다

(사진은 티브이조선 미스트롯2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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