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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Jan 10. 2021

코로나 방역 수칙의 형평성

방송국은 예외인가?

코로나에 의한 고통이 시작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나는 원래 학교 다닐 때는 학교와 집,

졸업 후에는 직장과 집만을 오가는 일종의 집돌이었다.

일이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와서 집에 처박혀 있는 것이 내 일상이었다.

정확히 살펴보진 않았지만, 얼추 1년 365일 중에 300일은 집에 박혀 지낸다.

집 중에서도 거실과 안방 두 군데에 집중적으로 앉아 있거나 누워 있다.

어릴 때 워낙 작은 방에서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았고,

모든 생활을 그 방에서 하면서 자라서인지,

아니면, 성장해서도 박혀 지내는 게 일상이 되어 익숙해져서인지

코로나가 나에게 준 정신적인 타격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을 때 못 만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심지어 지금은 가족도 만나지 말라고 하니 말이다.


작년에 소득은 줄었지만, 생계에 지장이 었으니 그래도 나는 훨씬 나은 편이다.

지금 너무나 많은 소상공인들을 비롯한 국민들이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

먹이고 키우기 위해서 몸이 녹초가 되어도 일터로 나가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먹고살고 먹이고 키우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새삼스럽게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원래 처박혀 있는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하게 되어있다.

나는 티브이를 주로 본다.

보다 보니 "방속국은 방역수칙을 준수하고 촬영하였습니다."라는 문구만 띄우면,

'일반 국민들과 다른 것을 해도 다 괜찮은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프로그램들에서도 느껴왔던 것이지만,

어제 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다 보니 이 프로그램으로 얘기를 하게 되었음을 방송국에서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칸막이를 해놓으면 뭐합니까.

일어서서 얘기하고 웃고 환호성을 지르는데.

모두 체온 쟀으니 괜찮은 것인가요?

식당에도 칸막이를 해놓은 곳이 많고, 이보다도 더 거리가 떨어져서 식사를 합니다.

심지어 밥 먹느라 여기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외식을 할 때 밥 나올 때까지 마스크 쓰고 있다가 얘기는 최대한 자제하고 밥만 빨리 먹고 나옵니다.

여기는 칸막이만 해놓고 마스크도 쓰지 않습니다.

칸막이가 있다는 이유로 거리두기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습니다.

일어서면 지척입니다. 칸막이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도 못합니다.


대기실은 더 심각합니다.

이 두장의 사진보다 더한 장면도 있습니다.

이미 칸막이는 그냥 장식일 뿐입니다.

방송에 나온 상황이 이러하니, 방송에 나오지 않은 장면은 어떨지 가히 짐작이 됩니다.

마스크 안 쓴 것은 기본이고,

더 큰 환호성에, 일어서서 그냥 편안하게 즐기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서로 안아주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습니다.

저 좋은 장면을 난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참으로 슬프지만,

난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가족도 집에서 서로 모든 것을 따로 쓰라고 할 정도입니다.

곧 아버님 팔순인데, 코로나 수칙을 지키기 위해 모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따로따로 가서 뵙자고 합의를 했습니다.

국가의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서 80 평생에 딱 한번뿐인 잔치,

그것도 형제자매만 모이는 잔치마저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뭐 잔치야 생계와 관련된 것이 아니니 그리 억울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당구장- 마스크 안 벗고도 얼마든지 저 사진보다 더 떨어진 거리에서 할 수 있습니다.

피시방-이곳은 칸막이까지 해놓고 마스크 쓰고 놀 수 있습니다.

헬스장, 필라테스, 등등 수많은 체육 시설이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할 수 있습니다.

식당- 얼마 전 어느 지자체에서 얘기할 때 가리는 매너 캡(?)을 식당에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거리 잘 유지하고, 매너 캡 사용하면 저 사진보다 훨씬 더 안전할 것을 확신합니다.

저는 제 사업장에 비치해두던 커피, 녹차 등 마실 것을 작년 코로나 시작 때 이미 없앴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되기에 부득이하게 차 종류를 비치하지 않으니 이해 바랍니다"라는 문구를 써놓았습니다.

오시는 모든 분들이 흔쾌히 받아들이셨습니다.


방송국이 더 방역을 잘하니 괜찮다고 하고 싶은가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체온도 재고, 다 검사한다고 하실 것인가요?

요즘 그렇게 안 하는 사업장이 어디 있습니까?

골프장에 가면 식당과 비슷하거나 더 좁은 공간의 휴게실이나 식당에서 네 명씩 한 테이블에 앉아 먹고 마시고 얘기합니다.

세 팀이 놀러 가서 따로따로 앉아서 그리하면 방역 수칙 위반도 아닙니다.

까짓것 걸리면 그냥 우연히 만났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이게 지금 말이 됩니까?

골프장은 생계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힘든 사람들이 아닙니다.

과연 형평성에 맞는 것입니까?


방역을 하다 보면 형평성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잘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가요?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행복지수는 내 주변의 사람이 나와 얼마나 차이가 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집에는 다른 집에 없는 라디오 하나만 더 있어도 더 행복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은 참 중요하고 저도 그렇게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비교되는 상황들이 허다합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모두가 힘듭니다.

나만 힘들면 견딜 수 없을 것이지만, 모두가 힘드니 함께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업을 못하게 하면서

티브이에서는 저런 장면들이 계속 나온다면,

열불 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겠습니까?

방역수칙을 완화하자거나 지키지 말자는 말이 아닙니다.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로는 해주지 못할망정

국민들을 겁 주고, 형평성을 상실하여 박탈감에 시달리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촛불 정신으로 무장된 정부를 만들어 놓았는데,

여전히 방송국, 골프장(골프장은 역대급 호황을 누렸습니다. 심지어 요금까지 다 올렸습니다.) 등

충분히 살만한 사람들은 더 충분하게 살만해지고,

힘든 사람들은 더욱더 힘들어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그저 핑계일 뿐입니다.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 때문에,

국민들의 몸과 마음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방송국을 비난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든 것도 아닙니다.

그저 국민들의 마음을 살펴달라는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진은 KBS2  트롯 전국체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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