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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소원 빌기

by 공작세

'안녕 나야'를 보았다.

남녀 주인공이 소원 비는 돌탑으로 가서 소원을 빈다.

여자 주인공은 좋은 소식을 듣지만, 남자 주인공은 나쁜 소식을 듣게 된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이나

거의 대부분이 하는 것이 소원 빌기일 것이다.

왜 인간은 소원을 비는 것일까?

그것도 돌에게, 연등에, 십자가에, 물그릇에, 별똥별에, 떠오르는 해에, 등등에.


아마 불안해서일 것이다.

물론 가진 것이 많으면서도 더 갖고 싶어 비는 사람도 있고,

아이가 공부를 아주 잘함에도 시험 잘 보기를 바라면서 비는 사람도 있고,

그냥 심심해서 비는 사람도 있고,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사람도 있고,

밑져도 본전이니 일단 빌고 보는 사람도 있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거나, 미래에 대해 불안하거나, 이루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빌면 정말 이루어지는가?

백일기도, 일천번제 등을 하면 이루지 못할 것도 이루어지는가?

모두가 생각은 다르겠지만,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빈다.

문제는, 이들이 원하는 것이 서로 상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오기를 비는 사람이 있는 동시에 날씨가 좋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고,

서울대학교 어떤 과를 놓고 비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떨어진다.

두 가지 예를 들었지만,

자연에 대한 것이든, 실생활에 대한 것이든

분명 누군가는 단맛을 보고, 동시에 누군가는 쓴 맛을 본다.

그러면,

단맛을 본 사람은 그만큼 더 착한 사람이거나 어떤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고

쓴맛을 본 사람은 그 반대이기에 '이번에는 들어주지 않았지만 다음에는 들어주겠지'라고 위안하며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선한 사람도 평생을 힘들게 사는 경우도 많고, 악한 사람도 평생을 잘 먹고 잘 사는 경우도 많으니까.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래서, 다른 종교의 경우는 말하는 것이 실례가 될 것이기에

아무것도 아닌 나이지만,

감히 기독교에 태클을 건다.


기독교인들도 요즘에는 별의별 문제로 기도를 한다.

연초에는 기도 제목을 써서 내라 한다.

그 기도 제목대로 목사님들이나 중보기도 팀들이 기도해준다고.

기도 제목에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것들이 허다하다.

"제 손주가 밥 잘 먹게 해 주세요."

"제 자녀들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는 그나마 애교에 속한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천번제라는 것을 하는 교회들도 많다.

일천번제 하면서 꼭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헌금임은 말할 것도 없다.

수능 때가 되면 어떤 교회에서는

자녀의 이름과 원하는 대학교 원하는 과를 적은 명찰을 목에 걸고 단체로 모여 기도하는 곳도 있다.

이들 중에는 같은 대학교 같은 과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어쩌다가 하나님은 이렇게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일까?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어야 하는 것일까?

어떤 기도는 들어주고, 어떤 기도는 들어주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이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니 내가 감히 무어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러한 처지에 놓이게 한 장본인들에 속해 있는 기독교인으로서

참으로 죄송하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우리에게 공짜로 주어진 자연의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기도는 최고이다.

자신의 수양을 위한 기도는 아주 훌륭하다.


하지만,

소원을 빌기 위한 기도는

그저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남의 그릇을 빼앗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더 나아가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께서 말씀하신 대로

남을 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 노력은 죽을힘을 다해서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하는 존재이니까.


오죽하면,

부처님은 해탈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마지막 단계로

'아상(나에 대한 상)"을 없애는 것이라고 하셨을까.

얼마나 인간이 자기 본위적이었으면,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조건으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라고 하셨을까.


이 말씀대로라면,

굳이 소원 빌기 기도를 하고 싶다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이번에 제 자녀는 어느 대학 어느 과에 합격을 못해도 좋으니, 다른 사람의 자녀가 합격하게 해 주세요."


나는 이런 기도 할 자신이 없다.

나는 나와 내 가족이 가장 중요한 이기적인 인간일 뿐이니까.

그렇다고 내 자식 합격시키기 위해 남의 자식 떨어뜨려달라는 기도는 절대 할 수 없다.

(내 자식 합격시켜 달라는 기도는 곧 남의 자식 떨어뜨려 달라는 기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소원 빌기 기도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다.


(사진 출처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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