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가 반팔자 - 다음 국어사전 속담.
어떤 부모를 만났는가 하는 것이 자기 운명의 절반을 결정한다는 뜻으로,
사람의 운명이 부모에 의해서 크게 영향받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는 자수성가 부류에 속한다.
자수성가한 사람 입장에서는 '부모가 반팔자'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부유했고, 자라면서 부족함 없이 자랐고, 평균 정도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부모가 전팔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그만큼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중고등학교 때 학용품이나 용돈은 배달을 해서 벌어 썼고,
이것마저 아껴서 부모님 생신과 동생들 생일을 철저하게 챙겼고,
대학교 입학 등록금이 없어서,
소위 명문대학교를 포기하고 2년간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교에 들어갔고,
나머지 4년은 군에서 주는 군 장학금을 받으며 겨우 졸업할 수 있었다.
대학교 때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부모님 가게 전세 인상 시 도움을 드렸고,
나머지는 부모님 빚 갚는데 썼다.
이 정도면, '부모가 반팔자'라는 말에 긍정적인 면으로는 동의할 수 없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부정적인 면으로는 동의할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하지만, 나는 긍정적인 면으로 동의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이 때부터 위험 요소에 대해서 스스로 대처할 수 있을 때까지
부모님이 지켜주지 않았다면 이미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일 것이다. 나는 지금도 건강하게 잘 있다.
집이 가난했기에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웠고,
장남으로서 부모님 일을 돕고 빚을 갚고 봉양해야 했기에 엄청난 책임감을 기를 수 있었고,
주경야독을 해야 했기에 끈기와 인내를 배울 수 있었고,
집은 점점 가난해지는데 가장으로서의 책임은 멀리한 체 씀씀이가 해프고 도박도 하고 자식들을 노예처럼 부렸으며 군에서 주는 교재비를 자신에게 주지 않는다고 책망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절대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에 또 다짐했었기에
절약정신을 배웠고, 남에게 돈을 절대로 빌리지 않았고, 자녀들에게 같은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원동력이 되었고,
아버지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40세에야 나를 낳으시고 나를 너무 힘들게 하셨기에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빨리 낳아 56살 되던 해에 자녀들을 모두 독립시키고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되었고,
이런 아버지와 살면서 너무나 힘드셨을 텐데도 다 견디시며 우리를 뒷바라지하느라 평생을 바치신 엄마를 보면서 부모로서의 헌신을 배웠고,
온갖 역경을 겪으며 역경지수가 엄청 높아져서 웬만한 것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이 길러졌으니
긍정적인 면에서 '부모가 전팔자'라 해도 나에게는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모가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일까?
어린 자녀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노심초사하면서 보호해주고,
성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아이처럼 취급하며 사랑 표현을 하고,
여자 친구가 생기고 결혼을 했음에도 자녀를 너무 예뻐한 나머지 둘 사이에 끼어든다면
부모가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식을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부모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하든,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든,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족에 기초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하기에 자기만족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좋은 것이라면 그 정도의 만족은 보상으로 주어도 괜찮다.
하지만, 봉사를 하든 사랑을 하든 자기만족이 목적이 되어버린다면 자칫 좋지 않은 상황을 일으키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
'마마보이'와 '마마걸'은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마마 ㅇㅇ'는 아닌데, 부모가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과도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자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사사건건 간섭하고 스트레스를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절대적이지는 않다. 확률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효자와는 결혼하지 말라'는 말에 나도 찬성한다.
이것도 다 그렇지는 않다.
효자이기에 아내에게도 잘하고 자녀들에게도 모범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효자이다. 그럼에도 결혼했다. 그리고 잘 살고 있다.
내가 효자였으므로 내 자녀들도 효자이다.
이것은 의외로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효자임에도 '마마보이'가 아니었으며,
엄마께는 내가 하나밖에 없는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이었지만,
엄마와 아내는 고부갈등이 단 한 번도 없었을 만큼 잘 지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내도 잘했기 때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엄마께서 성인이 된 나를 전적으로 인정해주고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으셨고,
애정 표현은 오직 맛있는 반찬과 따뜻한 눈길과 '지웅이 엄마에게 잘해라'는 충고만으로 하셨기에
아주 어려운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다.
요즘은 시집살이와 처가살이를 한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녀를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사랑하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진정한 자녀 사랑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이다.
진정한 자녀 사랑은,
어린 자녀에게 옳고 그름을 알려주고, 가지고 싶은 것은 떼를 쓰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성에 의해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사춘기가 된 자녀에게 사춘기보다 갱년기가 더 힘들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사춘기라고 하여 기본을 벗어난 언행을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아야 하고, 사춘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사춘기인 줄도 모르고 사춘기를 지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성인이 된 자녀를 아이 취급하지 말고, 내 딸의 볼과 입술은 절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내 품에서 과감히 떠나보내 주며, 멀찍이서 지켜봐 주는 것이다.
자녀의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자녀 사랑은
자녀와의 약속은 철저하게 지키며,
자녀와의 관계에서는 내 욕심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내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하여 내가 죽을 때까지 자식들이 나로 인하여 힘든 일이 없도록 해주는 것이다.
# 대문 그림 : 다음 이미지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