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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Aug 27. 2021

나는 과연 얼마나'~~ 다운가!'

'~~ 답기'는생각보다 어렵다.

10개월간 엄마 배 속에 있다가 세상에 나올 때,

갓 나오는 아이답게 눈 꽉 감은 체로 우렁차게 울었다.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답게

부모가 힘들든 말든, 집안 형편이 어렵든 말든, 밥을 굶든 말든

조금만 웃겨도 배꼽을 잡았고

옷이 더러워지든 말든 흙바닥을 뒹굴며 놀았다.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우리 집이 매우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고,

이때부터 나는 어린이 다움을 잃어버리고,

어른 흉내, 가장 흉내를 내며 학용품을 아끼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엄마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 차 있었다.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는 

학생답지 못하게 공부보다는 쌀 배달과 집안일 돕는 것에 더 열심이었고,

청소년 답지 못하게 친구들과는 어울리지 않고

가게에 박혀 지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나는 여전히 청소년 답지 못했다.


대학 원서 쓸 때,

집 형편이 어려워 등록금 낼 돈이 없다는 아버지의 한 마디 말씀에

젊은이 답지 못하게 그동안 꾸어왔던 꿈과 야망을 과감히 접어 버리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소위 지잡대에 들어갔다.


대학교에 가서도 나는 여전히 대학생 답지 못했고, 청년 답지 못했다.

선배들이 사 준다 해도 집에 가야 한다고 거절하기 일쑤였고,

선배가 되어서는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후배들 술 한 번 제대로 사주지 못했다.

2학년 때는 자식 답지 못하게 아버지와 딜을 했다.

집 형편 때문에 여동생을 대학교에 보내 줄 수 없다는 아버지께 

군 장학금을 받아서 내가 대학 다니는 동안 집에서 한 푼도 가져가지 않을 테니 여동생 대학교에 보내 달라고.

이것이, 내 인생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지는 지 알면서도

사람답지 못하게 착한 척을 했다.


제 앞가림도 겨우 겨우 하고 있는 놈이

1987년에는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여 데모하다가 결국 1년 휴학을 하였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엄마께 아들 답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이도 생겼지만,

부모님의 빚을 갚기 위해 우리나라의 거의 끝과 끝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격주 부부를 8년간 하면서

가장 답지도, 남편 답지도, 아빠 답지도 못했다.

그중에서도 아이들 어릴 때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물론, 큰 아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는 퇴근하면 거의 집에 붙어 있을 정도로 함께 했었지만...


이후로 지금까지 ~~ 답게 살아보려고 무진장 얘를 썼으나,

여전히 마음에 찰 만큼 제대로 한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


~~ 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내 기준으로 ~~ 다웠다라고 생각되는 것도, 

다른 사람 기준으로는 ~~ 답지 못하게 보일 수도 있으니 더욱더 그러하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나니,

이제라도 나이답게, 누구 답게 살아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 답게 사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모두가 ~~ 답게 살아간다면

세상은 조금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도,

탈레반 답게, IS 답게, 나쁜 놈 답게 사는 것은 안 되겠지요.^^


PS

나쁜 뜻으로는 ~~답다는 말을 잘 쓰지 않으니

이 글에서  ~~은 좋은 의미로만 씌었습니다.


또 PS

자신의 나이에 맞게 사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 답게

청년은 청년 답게

어른은 어른 답게

노인은 노인 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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