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火), 그 시작과 끝에서 나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무엇에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에, 모든 이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다.
말이 섞이면 상처가 되었고, 감정이 앞서면 관계는 무너졌다.
가장 소중해야 할 사람들과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어그러졌을 때, 나는 뛰쳐나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때는 그게 명상인지조차 몰랐다. 그저, 머릿속에 가득 찬 소음과 몸속을 휘젓는 불덩이 같은 감정을 어떻게든 식히고 싶었다.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왜 모든 것이 나를 괴롭히는가. 왜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몰라주는가. 왜 나는 항상 뒤처지고,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지는가.
처음 며칠은 걷는 동안에도 속에서 화가 끓어올랐다.
'그 인간 때문이야.'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지?'
'세상은 왜 이렇게 불합리한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 질문들은 방향을 바꿨다.
'혹시, 이 모든 화의 시작이 나였던 건 아닐까?'
'나는 스스로를 얼마나 들여다보았던가?'
'내가 기대했던 것들은, 진짜 정당했나?'
그 질문들과 함께 걸으며, 나는 깨달았다.
화(火)는 세상이 나에게 한 짓이 아니었다.
화는 내가 세상을 오해한 방식이었다.
내가 쌓아온 분노는, 사실은 내 안에 자리한 두려움, 열등감, 그리고 애정에 대한 갈망이었다.
걷기명상은 내게 침묵 속의 거울을 선물해줬다.
말도 없이, 가르침도 없이, 그저 걸을 뿐인데, 마음은 점점 선명해졌다.
누가 나를 괴롭힌 게 아니라, 내가 괴롭히고 있었음을.
누가 나를 무시한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여기고 있었음을.
화는 그 자체로 악한 감정이 아니었다.
단지 오래된 슬픔과 고통의 언어였을 뿐이다.
걷기를 통해 나는 불(火)을 껐다기보다,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