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투자 문화를 가진 조직에서 오래 일했지만, 가장 좋아한 건 신상품 위원회에 안건을 가져가는 일과 새로운 투자 유니버스를 발굴하는 일이었고, 그렇게 시작해서 마침표까지 찍는 일이었다.
큰 조직은 기존 BM이 탄탄하니, 새로운 투자나 상품과 같은 신규 비즈니스를 리스크 테이킹해 볼만한데, RM과 심사, 컴플라이언스를 뚫는 프로세스 또한 첩첩산중인 경우가 많다. 그럴 때 그들보다 훨씬 더 무장한 리서치와 숫자, 리스크 헤지 방안에, 현재 벌어지는 경쟁 구도와 시장 상황까지 더하면, 일반적으로 미들과 백은 프론트 오피스의 논거를 꺾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세스를 거쳐 행한 신규 비즈니스는 당장의 매출 기여도보다도, 조직의 경쟁력과 미래 먹거리를 위한 씨앗을 뿌린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탄탄하게 추진되지 못한 신규 비즈니스는 생각보다 더 큰 재앙이 될 수 있다. 위에서는 위기의식으로 뭐라도 해야 해서 가져오고, 추진하는 비즈니스 부서는 리서치를 충분히 하지 못해 확신이 없고, 이에 따라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의지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윗사람의 넛지에 의해 추진되는 업무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조직 내에 표류하면 조직의 리소스를 소모시키고, 신속하게 수행되면 리스크에서 터진다. 큰 조직에서도 이러한 실패가 벌어진다.
꼭 비즈니스 부서가 아니더라도, 윗사람이 추진하는 방향을 완전히 지원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담당 부서가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 이를 때까지의 리서치가 있어야 하고, 다각도의 리스크 리턴을 고려한 실질적인 의사 결정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조직에서 누가 책임을 지는가보다 더 중요한, 조직의 성공이 누구로부터 나오는가에서, 이렇게 일하는 조직원들로부터 조직의 성공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P.S. 마침 이번주에 마무리한 책인 인텔의 전 사장 앤드루 그로부가 쓴 High Output Management는, 성공하는 조직을 만드는 관리에 대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