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워크 라이프 밸런스라는 용어가 유행한 것은 그 용어가 선진국의 문화를 대변했기 때문이다. 가족을 희생하고 야근을 해서 물건을 만들어 팔아야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부지런함은 산업시대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선진국을 보니, 저녁과 주말은 자연 속에서 평온을 즐기거나 문화를 즐기거나 가족 행사에 참여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런 밸런스가 선진국으로의 도약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선진국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더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워크 라이프 밸런스는 MZ세대의 일과 사생활의 분리로 이어지며, 이제는 직원들에게 업무 시간 외 별도 시간을 할애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회사의 과도한 요구로 인식된다. 윗 세대처럼 회사를 위해 일만 했더니 그 결과가 가족 관계를 망치거나 은퇴 후 시간을 함께할 사람이 없다던가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교훈이 회자되면서.
그런데 워크 라이프 밸런스를 확보한 우리 MZ들은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을까. 52시간이 도입되며 대기업의 근무 환경이 교수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있어도 직원들이 회사에 만족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일하기 싫어하는 존재여서가 아니다.
<콰이어트>와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에 보면, 자신의 성향을 뛰어넘어 어떤 일을 하도록 만드는 힘은 그 일이 자신에게 의미하는 목적의식 때문이다. 즉, 몰입을 할 때의 즐거움을 한 번 경험하면, 그 성취감과 만족감 때문에 가만히 누워 빈둥거릴 때의 편안함을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건 어른들 말씀처럼 미래에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혹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열심히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우리는 꼭 돈이나 명예나 인정을 위해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존재 의미와 자기가 시간을 보내며 즐거워하는 활동을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 일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가 확보해 준 것은 업무 시간 이외에 일하지 않을 권리이다. 하지만 업무 시간 이외에 일하고 싶거나 성취하고 싶거나 조직 내에서 개인의 컨트롤과 영향력을 원하는 만큼 가져가면서, 일과 라이프를 잘 병행하는 것에 대한 과제는 아직 남아 있다. 일은 여전히 삶의 의미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이지만, 가족이 시간을 같이 보내며 중요한 것들을 같이 설계하고 서로의 성장을 지원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우리는 이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