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동진 노래를 좋아한다. 가사가 마음을 때리는 데다 특유의 느린 운율이 긴 여운을 남겨서다. 부드럽고 낮은 음색으로 읊조리듯 부르는 <작은 배>, <나뭇잎 사이로>, <행복한 사람>, <제비꽃>을 듣고 있노라면 그가 펼쳐놓는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스무 살 풋풋한 나이에 만난 <행복한 사람>은 내 애창곡이기도 하다. 지금도 노래방에 갈 때면 부르곤 한다. 육십을 넘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노래긴 하지만, 행복만이 있지 않은 현실에 그래도 행복하고 싶은 소망을 놓고 싶지 않은 마음 탓인지 모른다.
<제비꽃>은 감상용이다.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두 청춘남녀의 애잔한 모습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 때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 너머 먼 눈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
첫 직장에 입사해 다니던 1980년대 중반 어느 날, 퇴근길 시내버스에서 처음 들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어쩜 이런 노래가 있을 수 있나 싶었다. <행복한 사람>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전혀 다르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노래를 들어 보면 감동은 여전히 그대로다.
ⓒ 정승주
나는 꽃에 참 무지하다. 목련, 벚꽃, 개나리 정도는 알지만, 라일락에서부터는 헷갈리기 시작한다. 진달래와 철쭉은 구별해 내기 어렵다. 고백하건대 노래 <제비꽃>은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정작 봄이면 피는 그 흔한 제비꽃을 몰랐다. 아니, 꽃으로서의 제비꽃 자체가 머리 안에 없었다. 엊그제 아침 아파트 옆 공원길을 산책하다 아내가 그 존재를 가르쳐 줄 때까지는.
두어 개 핀 민들레 옆에 자리 잡은 작은 꽃들이 이뻐 아내에게 무슨 꽃이냐 물었더니 제비꽃을 모르다니 하며 혀를 찼다. 아내가 가르쳐 준 제비꽃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얇고 작은 보랏빛 꽃이었다. 분명 민들레처럼 화사한 색깔을 뽐내지는 않았다. 나무들 사이 풀밭에 아스라하고 수줍은 듯 낮게 자리한 소박한 꽃이었다.
노래는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이제야 제대로 알아보다니. 몰라본 내가 부끄럽고 미안했다. 관심 영역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무심해지는 내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