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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옹 Jun 19. 2024

난생처음 해본 ‘매실’ 수확

처형네는 당진에 시골집을 갖고 있다. 텃밭조차 엄두를 내지 못해 있는 땅을 놀리고 있는 우리 부부와는 달리 처형 부부는 땅을 참 잘 가꾼다. 일하는 모습을 보면 손동작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타고난 농부다. 재택근무로 상주하다시피 했던 코로나 때는 상추, 부추, 호박을 키우는 텃밭 정도를 넘어 콩, 포도, 복숭아, 매실, 블루베리를 재배하는 수준이었다. 지금도 매주 하루나 이틀을 머물며 시골 생활의 여유를 즐긴다.

      

처형네가 시골집으로 불러줄 때면 아내와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내려간다. 한나절이지만 시골 생활을 만끽하면서 서리하듯 갖가지 채소를 수확(?)해 올 수 있어서다. 그러니 처형네의 시골집 초대는 우리 부부에게 있어 생활의 활력소이자 즐거움이다. 


드디어 두어 달 만에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처형네가 매실을 따러 오라고 연락한 것이다. 사실 우리 가족은 매실액 없이 지낼 수 없다. 나와 아내뿐만 아니라 두 아들 모두 속이 불편할 때 매실액을 타 마시면 바로 효험을 보기 때문이다. 독립해 나가 사는 큰 녀석은 집에 올 때면 꼭 챙긴다. 둘째도 피자나 치킨을 시켜 먹을 때면 콜라 대신 매실 에이드를 만들어 마신다. 


ⓒ 정승주 


효험이 좋다는 걸 처음 알았을 당시 아내는 매실액을 매장이나 인터넷에서 구매했다. 가족들 모두가 애용하다 보니 수요가 크게 늘었다. 결국 아내는 열매를 구매하여 항아리에 매실액을 담곤 했다. 그렇게 해도 부족할 때가 많았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처형은 고맙게도 매번 자신이 직접 담은 소중한 매실액을 보내줬다.

     

방문을 약속한 날, 이른 오후, 우리는 삽교호 옆 우강면에 있는 처형네 시골집에 도착했다. 보자마자 처형은 자기들이 필요한 매실은 지난주에 모두 수확했다면서 원하는 만큼 마음껏 따 가라 했다. 가뭄이라 낙과가 많이 생겨 양이 적을 수도 있을 거라며 우려를 덧붙였다. 올해는 매실 걱정을 덜었다 싶었는데 살짝 불안해졌다.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처형은 매실나무가 있는 땅에 우선 가보자 했다. 도착해 보니 대여섯 그루가 있었다. 곧바로 열매 채취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손에 닿는 열매부터 따기 시작했다. 손에 잡혀 떼어지는 촉감이 좋았고, 따는 재미도 쏠쏠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많이 채취하겠다는 욕심에 처형이 가르쳐준 대로 높은 곳에 있는 열매를 쇠막대기로 연신 두드렸다. 머리 위로 우수수 떨어지는 매실의 부딪힘이 상쾌했다. 떨어진 매실을 쪼그리고 앉아 부지런히 주워 플라스틱 박스에 담았다. 작업을 마무리한 결과 박스 하나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아내에게 그래도 좀 부족하지 않을까 했더니 집 옆 밭에 매실나무가 더 있다고 비밀이라도 알려주듯 말했다. 나는 속으로 기쁨을 삼켰다. 

     

다시 처형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내 말처럼 밭 귀퉁이에 서너 그루의 매실나무가 있었다. 처음 두세 그루에는 열매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나무는 풍성했다. 괜스레 신이 났다. 나는 연신 열매를 막대기로 두드려 떨어뜨리고, 손에 닿는 것은 따고, 떨어진 것들은 줍고 하며 노다지 캐듯 일했다. 금방 한 박스가 또 채워졌다.

      

소정(?)의 목표를 달성한 나는 이제 쉬어야지 싶었는데, 처형은 장독대로 가서 우리에게 줄 된장을 챙겼다. 낌새를 보니 아내와 이야기가 다 된 듯했다. 그러면서 처형은 아내에게 블루베리, 상치, 부추도 가져갈 수 있으면 캐서 가져가라 했다. 아내는 기뻐하며 쪼그리고 앉은 채로 따고 베고 다듬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보조에 맞춰 수확물을 비닐봉지에 담는 일을 도왔다.

      

이제 진짜 끝났나 싶었는데 처형은 아내에게 따온 매실을 마당 수돗가에서 씻는 게 좋을 거라 했다. 아파트 싱크대에서 하려면 너무 번거롭고 성가실 거라며 엄청나게 큰 통을 수도꼭지 아래에 가져다 놨다. 처형의 조언대로 우리 부부는 통에 물을 받고 매실이 담긴 박스를 통째로 넣었다. 둘은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흐르는 물에 열매를 일일이 씻고 꼭지를 땄다. 

     

모든 일이 끝나니 9시가 넘었다. 순간 시장기가 몰려왔다. 다급히 집 안 부엌으로 들어갔다. 손이 빠른 처형이 이미 제육볶음을 해놨다. 수확한 상추에 싸서 먹으니 꿀맛이었다. 믹스 커피 한 잔으로 늦은 저녁 식사를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부러울 게 없었다. 

     

처형이 챙겨준 된장과 갖가지 채소, 그리고 매실을 차 트렁크에 한가득 실었다. 집으로 운전해 오며 아내에게 ‘처형네가 진짜 고맙지 않아? 내가 복이 많은 것 같애’ 하니, 아내는 ‘아휴, 이제야 알다니’ 하며 혀를 차는 시늉을 했다. 12시가 넘어 집에 도착해 짐을 모두 정리하고 나서야 노동의 뒤끝이 온몸에 전해졌다. 아내도 힘든지 우리는 거의 동시에 ‘내일 하루는 둘레길 걷기를 쉬자’ 했다. ‘이심전심이네’ 하며 같이 웃었다.

     

다음날 느직하게 일어난 아내는 된장과 수확물을 지인들과 나눌 준비를 했다. 괜스레 매실은 욕심이 나 아내에게 매실도 나눌 거냐며 조심스레 물었다. 큰 매실은 장아찌로 담그면 좋아 의향이 있는 지인에게만 조금씩 나눌 거라 했다. 매실장아찌는 씨를 빼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무작정 나누면 민폐가 될 수도 있다는 거다. 아내가 괜히 멋있게 보였다. 그 처형에 그 동생이다. 

    

나눔은 늘 기분 좋게 한다. 사람이 지닌 본성이라 그렇지 싶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를 인간(人+間)이라 지칭하는 건 아닐까. 내일 둘레길 동행 때 지인들 앞에서 조금은 뿌듯한 기분이 들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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