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벌레가 무섭다. 회갑을 넘겼어도 바퀴벌레 하나 잡지 못한다. 이유는 모른다. 벌레만 나타나면 꼼짝달싹할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파리나 모기를 무서워하진 않는다. 하여 여태 집안의 모기 잡기는 내 몫이다. 눈이 어둡고 몸이 굼떠 잘 해내지 못하는 탓에 아내의 신뢰가 예전 같지 않지만.
내가 벌레를 무서워하는 건 천성인 듯하다. 언젠가 아내는 어머니께 내가 집안에서 벌레 하나 못 잡는다고 고자질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 편을 들기는커녕 내 흑역사를 소환하며 맞장구치셨다.
내가 네다섯 살쯤, 시골 외갓집에 들렀을 때였단다. 나를 마당 돌 턱에 앉혀놓았더니 하도 순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버버지(벌레) 문다’를 연신 외치더란다. 어머니가 놀라서 가보니 그저 개미 몇 마리가 발 근처에 오가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때 알아봤다 했다. 두 여자에게 놀림당해도 어쩌랴. 사실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유전자를 물려받아선지 두 아들도 하나같이 벌레를 무서워한다. 큰 녀석은 축구를 좋아하고 군대까지 다녀왔는데 벌레만 나오면 그 큰 덩치가 도망치느라 바쁘다. 어릴 때 검도를 배우고 주짓수 학원도 다닌 작은 녀석은 한술 더 뜬다. 집안에 벌레가 출몰하면 무서워하는 내 뒤에 숨기까지 한다. 모두 180이 넘는 장정인데 그렇다.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몇 년 전부터 베란다에 가끔 벌레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올해 들어와서는 집안까지 자주 들어온다. 초여름부터 수목 바퀴벌레를 하루건너 본다. 아내 말로는 집안에서 수목 바퀴는 번식할 수 없고 숨지도 잘 못한단다. 그래도 바퀴벌레처럼 기어다니니 나는 무섭다. 한번은 거실 화장실까지 진출했었다. 작은 녀석이 화장실로 들어가다 발견하고 기겁했다.
당연히 처리는 아내 몫이다. 아내는 20년이나 된 낡은 샤시와 방충망을 새로 해야 하나 했다. 나는 안다. 절대 바꾸지 못할 것을. 결국 아내는 유리 창문과 방충망 틀 배수구를 다이소의 천원짜리 벌레 차단 밴드로 막았다. 그 후로 출몰 빈도가 확연히 줄었다.
ⓒ 정승주
어제다. 12시가 다 된 늦은 밤, 아내는 독서 중이고 나는 졸린 눈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왕벌로 보이는 날벌레 하나가 내 눈앞을 ‘휙’하고 스쳐 지나갔다. 온몸의 털이 쭈뼛하게 서고 피부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라 나도 모르게 외마디를 질렀다.
“여보!!! 벌이야! 벌이 들어왔어!”
아내도 다급하게 “어디! 어디야! 빨리 전기 채 가져 와!”하며 덩달아 소리쳤다. 허둥지둥 벌레를 피해 부엌 선반에 있는 전기 파리채를 찾아 가져왔다.
아내가 내게 “잡아!” 했다. 오르락내리락하며 습격하듯 불규칙하게 달려드는 날벌레를 향해 나는 잡으려는 건지 막으려는 건지 분간할 수 없이 채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겁먹어 휘젓는 데 잡힐 리 만무했다. 보다못해 아내는 “어휴~ 속 터져~”하며 내게서 채를 빼앗아 휘둘렀다. 너무 빨라 잡지 못하기를 대여섯 차례 했을까? 순간 허공에서 불꽃이 튀었다. 워낙 커서 – 내 눈에만(?) - 그런지 날벌레는 떨어지듯 날듯하며 의자 뒤로 사라졌다.
“의자 뒤집어 봐!”
나는 속으로 ‘왜 자꾸 날 시켜… 자기가 하지…’하면서도 말로 뱉지 못하고 겁먹은 아이처럼 조심스레 의자를 뒤집었다. 하지만 흔적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다시 의자를 제대로 돌려놓았다. 그때 벌레가 의자 위 틈새에서 힘없이 기어 나왔다.
“여보! 벌레다!”
내 외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아내가 옆에 있는 화장지를 집어 벌레를 냅다 덮쳤다. 아내는 조심스레 확인하며 “아휴~ 노린재네” 했다. 노린재인 줄 알았으면 살려서 내보내면 되는데 내 호들갑에 애꿎은 노린재만 죽였다며 나를 책망했다. 왜 벌레만 나오면 자기가 잡아야 하냐며 한탄도 했다.
나는 잘못 저지른 아이처럼 아내 눈치만 살폈다. 스스로 왜 이 모양일까 싶었다. 한참 동안 눈을 흘기는 아내의 시선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벌레만 보면 뇌와 몸이 멈추는걸. 나는 짐짓 모른 체 했다.
한바탕 소동을 벌인 탓에 오던 잠도 달아났다. 아내 낌새를 보니 다시 평상심으로 돌아온 듯해 뒤로 살그머니 가서 어깨를 주물렀다. 말로는 “왜 그래~ 더워!”하지만 팔과 목까지 내준다. 풀렸다는 신호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