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옹 Aug 31. 2024

한밤중 벌레 소동

나는 벌레가 무섭다. 회갑을 넘겼어도 바퀴벌레 하나 잡지 못한다. 이유는 모른다. 벌레만 나타나면 꼼짝달싹할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파리나 모기를 무서워하진 않는다. 하여 여태 집안의 모기 잡기는 내 몫이다. 눈이 어둡고 몸이 굼떠 잘 해내지 못하는 탓에 아내의 신뢰가 예전 같지 않지만. 

      

내가 벌레를 무서워하는 건 천성인 듯하다. 언젠가 아내는 어머니께 내가 집안에서 벌레 하나 못 잡는다고 고자질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 편을 들기는커녕 내 흑역사를 소환하며 맞장구치셨다. 

     

내가 네다섯 살쯤, 시골 외갓집에 들렀을 때였단다. 나를 마당 돌 턱에 앉혀놓았더니 하도 순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버버지(벌레) 문다’를 연신 외치더란다. 어머니가 놀라서 가보니 그저 개미 몇 마리가 발 근처에 오가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때 알아봤다 했다. 두 여자에게 놀림당해도 어쩌랴. 사실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유전자를 물려받아선지 두 아들도 하나같이 벌레를 무서워한다. 큰 녀석은 축구를 좋아하고 군대까지 다녀왔는데 벌레만 나오면 그 큰 덩치가 도망치느라 바쁘다. 어릴 때 검도를 배우고 주짓수 학원도 다닌 작은 녀석은 한술 더 뜬다. 집안에 벌레가 출몰하면 무서워하는 내 뒤에 숨기까지 한다. 모두 180이 넘는 장정인데 그렇다.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몇 년 전부터 베란다에 가끔 벌레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올해 들어와서는 집안까지 자주 들어온다. 초여름부터 수목 바퀴벌레를 하루건너 본다. 아내 말로는 집안에서 수목 바퀴는 번식할 수 없고 숨지도 잘 못한단다. 그래도 바퀴벌레처럼 기어다니니 나는 무섭다. 한번은 거실 화장실까지 진출했었다. 작은 녀석이 화장실로 들어가다 발견하고 기겁했다.  

    

당연히 처리는 아내 몫이다. 아내는 20년이나 된 낡은 샤시와 방충망을 새로 해야 하나 했다. 나는 안다. 절대 바꾸지 못할 것을. 결국 아내는 유리 창문과 방충망 틀 배수구를 다이소의 천원짜리 벌레 차단 밴드로 막았다. 그 후로 출몰 빈도가 확연히 줄었다.       



ⓒ 정승주  

    


어제다. 12시가 다 된 늦은 밤, 아내는 독서 중이고 나는 졸린 눈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왕벌로 보이는 날벌레 하나가 내 눈앞을 ‘휙’하고 스쳐 지나갔다. 온몸의 털이 쭈뼛하게 서고 피부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라 나도 모르게 외마디를 질렀다. 

    

“여보!!! 벌이야! 벌이 들어왔어!”  

    

아내도 다급하게 “어디! 어디야! 빨리 전기 채 가져 와!”하며 덩달아 소리쳤다. 허둥지둥 벌레를 피해 부엌 선반에 있는 전기 파리채를 찾아 가져왔다.  

    

아내가 내게 “잡아!” 했다. 오르락내리락하며 습격하듯 불규칙하게 달려드는 날벌레를 향해 나는 잡으려는 건지 막으려는 건지 분간할 수 없이 채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겁먹어 휘젓는 데 잡힐 리 만무했다. 보다못해 아내는 “어휴~ 속 터져~”하며 내게서 채를 빼앗아 휘둘렀다. 너무 빨라 잡지 못하기를 대여섯 차례 했을까? 순간 허공에서 불꽃이 튀었다. 워낙 커서 – 내 눈에만(?) - 그런지 날벌레는 떨어지듯 날듯하며 의자 뒤로 사라졌다. 

     

“의자 뒤집어 봐!”  

   

나는 속으로 ‘왜 자꾸 날 시켜… 자기가 하지…’하면서도 말로 뱉지 못하고 겁먹은 아이처럼 조심스레 의자를 뒤집었다. 하지만 흔적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다시 의자를 제대로 돌려놓았다. 그때 벌레가 의자 위 틈새에서 힘없이 기어 나왔다. 

     

“여보! 벌레다!”  

   

내 외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아내가 옆에 있는 화장지를 집어 벌레를 냅다 덮쳤다. 아내는 조심스레 확인하며 “아휴~ 노린재네” 했다. 노린재인 줄 알았으면 살려서 내보내면 되는데 내 호들갑에 애꿎은 노린재만 죽였다며 나를 책망했다. 왜 벌레만 나오면 자기가 잡아야 하냐며 한탄도 했다. 

     

나는 잘못 저지른 아이처럼 아내 눈치만 살폈다. 스스로 왜 이 모양일까 싶었다. 한참 동안 눈을 흘기는 아내의 시선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벌레만 보면 뇌와 몸이 멈추는걸. 나는 짐짓 모른 체 했다. 

     

한바탕 소동을 벌인 탓에 오던 잠도 달아났다. 아내 낌새를 보니 다시 평상심으로 돌아온 듯해 뒤로 살그머니 가서 어깨를 주물렀다. 말로는 “왜 그래~ 더워!”하지만 팔과 목까지 내준다. 풀렸다는 신호다. 다행이다.         

이전 01화 계면쩍지만 행복한 둘레길 걷기 동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