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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옹 Jun 06. 2024

간 만에 꾼 전(前) 직장 꿈

요즈음 꿈을 꾼 기억이 없다. 잠을 잘 자면 그렇다지만 한두 번씩 깨곤 하는 나는 ‘해당 없음’이다. 은퇴한 신세라 오히려 그날이 그날인 듯 변화 없이 살고 있어 그런 듯싶다.


지난밤에 모처럼 꿈을 꿨다. 삼십 년 넘게 일했던 직장 관련 꿈이었다. 일한 세월만큼 아쉬움이 커선지 은퇴한 후 한동안은 꿈에 직장 동료들이 심심찮게 나타났었다. 이제 잊고 사나 싶었는데 다시 마주한 것이다.      


꿈은 어느 행사장에서 동료와 선배들이 나를 환영해 주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본 행사가 끝나자 곧바로 우리 일행은 밝고 화사한 분위기의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옆자리 동료들은 축하한다며 잘하지 못하는 술을 계속해서 내 잔에 부어줬다. 나로서는 연거푸 마시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주량을 훌쩍 넘긴 듯해 슬쩍 자리에서 벗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여러 테이블에 제법 많은 사람이 있었다. 술 대신 음식을 앞에 두고 식사하는 테이블이 눈에 띄어 술을 깰 심산으로 다가갔다. 후배들이 기관장 – 은퇴 전 내 근무처는 공공기관이었다 – 뒷담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자 흠칫 놀라며 급히 화제를 돌렸다. 내가 기관장도 아니고 더욱이 기관장과 그다지 잘 지내는 편도 아닌데 왜 첩자 보듯 하나 싶었다. 어색함에 쭈뼛쭈뼛하다 몸을 틀어 다른 편을 보니 은퇴한 선배들이 있었다. 몇 발짝 옮겨 먼저 인사했다. 누군가 ‘요즘 얼굴 보기 어렵네요’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말 외에 반응은 없었고 선배들은 무엇이 서운한지 냉랭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분명히 나를 축하해 주는 자리였는데 어느새 나는 왕따 신세가 되어 있었다. 과음 탓인지 아니면 마음이 상해선지 속은 매스껍고 가슴은 답답해 어찌할 바 모르다 깼다.      


정신을 차린 나는 ‘왜 이런 꿈을 아직 꾸지?’ 싶었다. 직장생활이 힘들었던 것도 아니고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것도 아닌데, 하물며 퇴직한 지 삼 년이나 지났는데 말이다. 납득이 가지 않아 최근 내게 일어난 일을 꼽아보니 지난 사나흘 동안 이전 직장과 관계된 몇 가지 소소한 일들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먼저 지난 화요일, 이전 직장에서 회의가 있었다. 나로서는 KTX를 타고 세종시까지 가야 하는 장거리 행차였다. 석 달 만의 방문이었다. 회의에 참석해 후배들이 한 작업 결과에 대해 이런저런 자문을 했다. 이튿날, 회의에서 만났던 후배에게서 자신이 수행하는 과업과 관련하여 문의 전화가 왔다. 내가 수행했고 참여했던 관련 과업이나 정책에 대해 알고 있는 사항들을 소상하게 설명해 줬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마치 복직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일에 치여 고생하는 후배들은 질색하겠지만 현직에서 일하는 그들이 살짝 부러웠다. 



ⓒ 정승주


           

전 직장의 기관장이 새로 임명됐다는 뉴스도 있었다. 화요일 회의에 들렀을 때 후배들로부터 새 기관장 임명이 곧 있을 거라는 말을 이미 들었다. 후배는 임명 예정 날짜까지 알려주었다. 이틀 뒤 잊지 않고 기사를 찾아보니 아는 대학교수가 임명됐다. 은퇴하기 몇 년 전 나도 조직을 이끌어 보겠다고 욕심부렸던 때가 떠올라 기분이 묘했다.     


또 있었다. 최근 OB 모임의 회장이 된 선배로부터 받은 전화 한 통이 그것이다. 모임 단톡방에 내 이름을 못 찾겠다며 연락해 온 것이었다. 내가 단톡방에 접속도 잘 하지 않고 모임에도 오지 않아 손수 관리에 나선 모양이었다. 점잖게 돌려 말했으나 요지는 모임에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며칠 남짓 사이에 동시다발로 일어난 일들을 하나씩 떠올려 집어 보니 꿈을 꿀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십 년 넘게 일한 직장이 여전히 마음 한 귀퉁이에 있구나 싶어 짠했다.      


나는 은퇴 후 삶에 대한 나름의 소신 비슷한 걸 가지고 있다. 굳이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보면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계획하지 말며, 현재를 마음 가는 대로 살자’ 정도다. 그런데도 몇 가지 일들이 스쳐 지나간 것만으로도 – 어떤 건 단순히 소식이었는데도 - 과거가 마음에 들어온 것이었다. 새삼 과거의 힘이, 관성의 무게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꿈처럼 다시 현역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그때보다 잘 해낼 자신은 내게 없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좋아하는 일이었는지도 솔직히 자신 없다. 그래서 은퇴한 지금 유독 자유로움과 마음 가는 것에 집착하는지 모른다. 죽음 이후 세계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절실하기도 하다. 어떤 이가 집착이라 비난해도 좋고 잘못된 생각이라 해도 좋다. 인생 무대에서 마지막 3막 공연을 해내고 있는 지금 내게는 현재를 온전히 마음 가는 대로 살고픈 바램밖에 남아있지 않다. 하여 오늘도 나는 나만의 걸음으로 그저 산다. 나머지는 꿈만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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