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첫째 주, 우리 부부는 결혼 30주년을 맞았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세월을 함께 헤쳐왔다는 게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 꿈이 아님을 일깨워 준다. 시간의 마법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아내는 기념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뿐더러 날짜마저 둔감하다. 7남매 중 밑에서 두 번째 서열로 오빠나 언니들을 따라 살아 온 집에서의 위치에 더해, 숫자 기억이 약한 개인적 특성에 따른 것이리라. 어느 정도냐 하면 결혼 초 장인어른과 장모님 생신을 물어보면 잘 기억하질 못했다. 앞으로 내가 챙기겠다는 의향을 내보이니 아내는 언니들이 결정하는 대로 자기 몫의 역할만 하면 된다며 그럴 필요 없다 했다. 이후 부모님 생신, 애들과 아내 생일 그리고 각종 기념일을 내가 챙겨오고 있다. 내 생일조차 스스로 챙긴다.
나 또한 기념일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다. 어쩔 수 없이 맡았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 집의 기념일 축하 방식은 천편일률적으로 외식이 전부다. 결혼 기념으로 다들 해외여행을 간다지만 우리 부부는 삼십 년 동안 국내 여행 한 번 간 적 없다. 요즘 은혼이라 해서 중요하게 여기는 25주년 때도 둘 다 깜박해 날을 넘겨 뒤늦은 외식을 했을 정도다. 그래도 아내는 결혼한 날이 다른 날과 뭐가 다르냐며 아쉬워하지 않는다. 마음 넓은 아내 덕택에 나로서는 편하기는 하다.
ⓒ 정승주
결혼기념일을 며칠 앞둔 날, 아내에게 우리가 삼십 년을 함께 했음을 일깨워 줬다. 아무리 기념일에 무심한 우리 부부지만 올해는 다르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넌지시 물어본 것이다. 예상대로 호응이 없었다. 그래서 예년보다는 좀 더 비싼 식당에서 외식하자 하니 그제야 그럴까 정도 반응이 돌아왔다.
우리 부부가 기념일을 잘 챙기지 않지만 그래도 부모인지라 애들에게는 다르다. 아내도 애들 생일은 어떠하든 챙겼다. 어릴 때는 외식에 케이크는 기본이었고 선물도 준비했다. 결혼기념일에는 애들과의 외식이 기본 루틴이었다.
둘째에게 엄마 아빠가 결혼한 지 30년이 되어 이번에는 좀 더 근사한 곳에 가서 식사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니 녀석은 뜻밖에 식사비용을 자기가 내겠다고 했다. 뜬금없었다. 사회복무요원이라 월급이 백만 원이 넘는다고는 하나 이건 아니지 싶어 괜찮다 했는데도 자기는 꼭 그렇게 하고 싶다며 고집했다. 매달 육십만 원을 저축(적금)하는 상황을 아는 터라 할 수 없이 생일 때면 자주 가는 중국음식점으로 정했다. 녀석은 더 좋은데 가도 된다고 했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어서다.
살짝 당혹스러운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작년에 독립해 나가 사는 큰 애에게서 카톡이 왔다. 결혼 삼십 주년 축하한다면서 돈을 조금 입금했단다. 이건 또 뭐지 싶었다. 둘째가 형에게 ‘엄마 아빠 결혼이 무려 삼십 년!’이라는 카톡을 보냈던 것이었다. 자기 딴에는 삼십 년이라는 숫자가 대단하고 의미도 크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급하게 계좌를 확인해 보니 제법 큰 금액이었다. 아내와 나는 당황했다. 아들에게 바로 전화했다. 결혼기념일은 부부의 자축 기념일인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나 다시 돌려주기도 뭐해서 결국 고맙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좀 있으니 큰 애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직원 할인이 되는 리조트에 예약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진짜 당황했다. 아내가 더 곤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다음에 만날 때 앞으로는 절대 신경 쓰지 말라고 할 거라며 연신 다짐하듯 말했다.
둘째가 벌려 논 예상치 못한 한바탕 상황이 지나고 마음이 진정되고 나서야 우리 부부는 어엿한 어른이 된 애들이 대견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대소사를 챙겨야 하는 현실의 어른이 되었구나 싶어 짠했다.
내일, 드디어, 아들이 예약해 준 리조트로 1박 2일의 여행(?)을 떠난다. 삼십 년 만에, 완전히 새로운, 완벽한 패키지로,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을 완성하기 위해. 첫째야 둘째야 고맙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