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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옹 May 14. 2024

글이 써지지 않는 날

한 주 내내 한 문장도 쓰지 않았다. 느긋한 토요일 저녁, 뭔가를 써야 할 듯싶어 책상 앞에 앉았다. 써지지 않는다.

      

비가 내린다. 비 사이로 세찬 바람이 소용돌이를 낸다. 여름비처럼 내린다. 아내에게 ‘천둥 번개 없는 여름비 같네’ 하니, ‘그래 말이야’하는 말만 돌아온다. 걱정이 묻어 있지 않다.      


거실에서 아내는 TV로 자기만의 세계여행을 즐기는 중이다. 화면 속 이국 풍경은 신의 손길을 보여주는 듯하다. 제 방에 있는 아들은 기분 좋은지 연신 노래를 흥얼거린다. 흥겨움은 아들 방을 벗어나 거실까지 넘실댄다.      


아내는 TV에 마음을 뺏기고, 아들은 노래에 마음을 내놓는다. 평화롭다. 아무 문제가 없다.     


나도 자유로움 위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써지지 않을 때는 쓰지 않으면 된다. 지금 자판에서 튕겨 나오는 건 글자가 아니라 여유와 평안의 자국이다. 고맙다. 써지지 않는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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