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지 어느덧 3년.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탓에 시행착오도 많았다. 이제야 바뀐 생활에 적응이 되는 듯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묘하게 긴장되는 부분 몇이 남아있다. 아내를 도와야겠다고 자청해서 맡은 가사일이 그중 하나다. 처음에는 일이 낯설어 실수도 많이 했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일을 어떻게 분담하느냐가 문제다.
내가 맡은 가사일은 시리얼이나 빵으로 하는 아침 식사 준비, 사회복무요원 아들 깨워 출근시키기(아내와 아들은 ‘아침 잠보’다), 청소하기(화장실 포함), 빨래 널기 및 개기, 커피와 차 내리기 등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전체 일에서 내가 맡은 비중은 아내와 비교해 턱없이 작다. 하지만 나는 절반을 분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내와는 달리 가사 전문가가 아니기에 투입하는 시간과 숙련도를 고려하면 그렇다는 논리다. 아내는 콧방귀 뀌지만.
ⓒ 정승주
능력껏 가사를 분담하고 있음에도 거실에 주로 있는 아내 옆에 얼쩡거릴 때면 아내는 이때다 싶어 내게 꼭 뭔가를 시킨다. 부엌 등이 켜져 있으면 꺼라 든 지, 차 한잔 마시자든지, 심지어 칫솔 좀 갖다 달라든지 하며 제법 많이 부려 먹는다. 내가 ‘당신 시종이야?’하고 저항하면 ‘싫으면 말고’ 한다. 거절의 후폭풍이 두렵기도 하고 성가시기도 해 열이면 열 분부대로 한다. 은근히 얄밉다.
가사 부담이 줄어선지 아내의 바깥 활동이 점차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나 홀로 식사가 많아졌다. 30년 넘는 직장생활에서 식사는 늘 동료와 같이한 탓에 나는 혼밥에 익숙하지 않다. 혼자 밥을 먹게 되면 나도 모르게 빨리 먹게 되어 가끔 체하기도 한다. 또 은근히 얄밉다.
약이 올라 아내에게 가사 분담이 불공평하다며 – 사실은 혼밥이 싫어 – 내가 맡은 일을 줄여달라 했다. 아내는 조금 분담하고 있는데 줄일 게 뭐가 있냐 한다. 내가 절반을 맡고 있다고 하니 정 그렇게 나오면 정확하게 반으로 나누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면서 당신만 은퇴한 게 아니라 자기도 일(집안일)에서 은퇴한 거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이 직장에서 일하는 세월 동안 육아와 가사일을 도맡아 했으니 그렇게 보는 게 공평한 거란다. 그럼에도 자기가 가사일 대부분을 떠안은 건 일에 서투른 나를 배려해서고, 한편으로 살림은 현실인데 꾸려가려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란 거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딱히 틀린 말이 아닐뿐더러 설득되기 조차한다. 묘하게 흘러간다 싶어 나는 서둘러 고지를 사수해야만 했다.
내게는 브런치 작가 일이 있어 지금의 분담만으로 충분하다고 강변했다. 아내는 1초의 멈춤도 없이 글쓰기로 돈이 생기냐고 되묻는다. 그렇게 따지면 자기가 하는 생협 마을지기 봉사도 일이라고 한다. 반박하기 어렵다. 논리로 당해낼 수가 없다. 아내의 말대로 우리 부부는 은퇴한 남자와 은퇴한 여자인 게 맞다.
반박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최후의 무기인 ‘동정심 유발하기’를 꺼냈다. 혼밥을 보다 적게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했다. 자꾸 체해서 그렇다고 하니 아내 표정이 살짝 달라졌다. 나는 혼자 산책하는 걸 싫어해서 당신 일정이 많아지다 보니 운동을 안 하게 되어 몸 상태도 나빠지는 것 같다고 결정타(?)를 날렸다. 수긍의 기색이 역력하다. 일정을 조정하고 동행 산책을 늘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슬그머니 가사 분담도 지금 수준으로 유지해달라 했다.
내 최후의 무기가 통했다. 아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알겠다 한다. ‘몰랐네, 미안해’라고까지 말한다. 아내가 나를 여전히 아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괜스레 과장했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스친다.
아내의 어깨와 손발을 골고루 주물러 주었다. 평소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지라 무척 좋아한다. 전과 다르게 내 손 관절에 받치는 힘이 무겁게 느껴진다. 나는 이제 안마해 주는 일조차 힘겨워하는 은퇴한 남자임이 실감 난다. 아내도 주부에서 은퇴한 갱년기 여자니 어쩔 도리 없다. 은퇴한 사람끼리 서로 기대며 티격태격 알콩달콩 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