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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옹 Mar 23. 2024

서툰 목수처럼 연장 탓했더니만

작년 6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계획에 없던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첫 글을 완성하고 나서 개인 블로그에 올리려고 보니 이미지 사진이나 그림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첫 그림으로 뭘 그려야 하나 하다 그린 것이 ‘책이 있는 거실 풍경’이다(아래 그림). 마침 눈에 띈 A4용지에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쓰던 색연필로 그렸다. 어디에 내놓기 부끄럽고 어설픈 그림이었지만 뿌듯하고 기뻤다. 중학교 시절 미술 시간 이후 무려 오십 년 만에 그린 그림이라는 상황이 작용한 것일 테다. 이 첫 그림은 브런치의 내 방 프로필 이미지로도 지금껏 쓰고 있다.      


ⓒ 정승주      


그렇게 그리기 시작한 색연필 그림이 이제 얼추 쓴 글의 수만큼 된다. 에필로그나 프롤로그를 뺀 모든 글에 그림 하나를 그려 넣어서다. 이번 글이 마흔아홉 번째 글이니 그림도 오십 편이 눈앞이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살짝 당혹스러운 게 하나 있다. 내 바램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글보다 그림에 더 관심이 많아서다. 은퇴하고 나서 지인들을 만날 때 상대방이 안부를 물어오면 나는 이때다 싶어 글을 쓰며 지낸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그러다 정작 쓴 글을 보여주면 대다수가 글에 대해서는 인사치레 정도 반응에 머물지만, 그림을 보고는 구도가 좋다느니 색감이 좋다느니 하며 부끄러울 정도로 칭찬해 준다. 


아내조차 그렇다. 글 쓰고 난 뒤 느낌을 물어보면 ‘괜찮네’ ‘무난하네’ 정도의 의례적 평을 내놓지만 그림에 대해서는 ‘~하니 ~하다’로 명확하게 평한다. 첫 그림을 그렸을 때는 엄청나게 칭찬했다. 그 덕에 힘을 얻어 부족한 그림을 여태까지 용기 있게 브런치에 올리고 있는지 모른다. 


주위의 칭찬과는 달리 그동안 그린 그림을 냉철하게 자체 평가해 보면 실력이 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늙어서 시작해선지 아니면 노력이 없어선지 발전이 더디다. 글에 넣으려고 그린 것이다 보니 글보다 관심과 애착이 적은 탓도 있지 않나 싶다. 아내가 여전히 칭찬을 해주고 있지만 좀 더 성의 있게 그리라고 타박하는 걸 보면 그렇다. 어느 때부턴가 ‘그림에 성의가 없네’ ‘좀 다양하게 그려 보면 어떨까?’ ‘색연필 그림 말고 수채화는 그리고 싶지 않아?’라는 말을 가끔 한다. 


아내가 훈수(?)를 둘 때면 나는 그림이 구색 맞추기용이지 공들여 그릴 마음은 별로 없다고 대꾸하곤 했다. 그럼에도 아내는 글에 대해서는 별말 하지 않으면서 유독 그림에 대해서만 잘 그려 보라며 채근한다. 내 지인들처럼 아내의 지인들도 열에 아홉이 글보다는 그림에 더 관심을 가져서 그런 듯싶다. 


어느 하루, 아내가 또 그러기에 색연필이 너무 오래되어서 색깔이 잘 나오지 않아 그렇다고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하듯 투정 아닌 투정을 했다. 사실 여러 회사 제품이 섞여 있어선지 색이 중복되거나 빠진 색도 있었고, 같은 색인 줄 알았는데 다르기도 했으며, 굳어서 잘 칠해지지 않는 것도 있었다. 아내가 새것으로 사주겠다 했다. 하지만 나는 은퇴하고서는 좋아하는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보며 돈 들이지 않고 글을 쓰는 마당에 그림 그리는 데에 돈을 쓰고 싶지는 않다고 고집했다. 


지지난 주 그림을 그리다 색연필이 굳어선지 정말 색깔이 칠해지지 않았다. 어찌어찌해서 마무리했다. 힘들었는지 나도 모르게 ‘색깔이 나오지 않아 힘드네’하며 엉겁결에 아내 앞에서 실토하고 말았다. 아내는 이때다 싶은지 색연필을 새로 사자며 검색에 들어갔다. 나도 궁상떨 게 아니다 싶어 동의했다. 결국 101가지 색을 낼 수 있는 색연필 세트를 거금(?)을 들여 샀다.


새 색연필로 그린 첫 번째 그림이 지난번 글 <마음 짠한 결혼기념일>에 넣은 케이크 그림이다. 확실히 잘 그려져서 힘은 덜 들었다. 그런데 더 수준 높게 그릴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결과는 이전 그림과 차이가 없다. 곰곰이 곱씹어 본 결과 이유를 찾았다. 색이 없으면 비슷한 색연필을 좀 더 눌러 진하게 내거나 연하게 칠해 원하는 색을 냈기 때문이었다. 잘 칠해지지 않는 색연필은 가급적 쓰지 않고 다른 색을 쓰거나 비슷한 색으로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결국 문제는 연장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헌 색연필 때문에 그림 수준이 떨어진 게 아니라 그릴 때 그저 힘이 조금 더 들었을 뿐이었다. 


아내에게 그림이 나아지지 않아 속상하냐 물었더니 ‘전혀’ 란다. 그렇다면 왜 사주었냐니 내가 그림 그릴 때면 색이 안 나온다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단다. 큰 애가 ‘엄마는 다 알고 있다’라는 말을 자주 하더니만, 정말 아내는 다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서투른 목수인지라 더 나은 그림을 그릴 수는 없지만 덜 힘드니 좋다. 안 사겠다고 고집 피웠던 탓에 좀 계면쩍긴 하지만 다 알고 새 색연필을 사준 아내가 고맙다. 글을 쓰고 나면 아내가 첫 독자로서 오타나 표현을 늘 봐주고 있다 해서 아부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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