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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옹 Sep 26. 2024

쓸데없는 고민

선선한 가을 공기가 온 집안을 감싼다. 길기만 하던 무더위가 언제 있었던 양 아스라하다. 쉼 없이 괴롭히던 피부 알러지도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유난스럽던 여름을 어떻게 넘겼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판이다. 

     

걱정이 줄어서일까? 여유가 생겨서일까? 불쑥 고민 아닌 고민 하나가 고개를 내민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에 구색 맞춤용으로 그려 넣는 그림을 이제는 좀 더 잘 그려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직전 글 <아내 생일>을 쓰고나서 넣을 그림을 그렸을 때도 같은 마음이 들었었다. 거실 책장에 놓여있는 오래된 가족사진을 보고 그렸는데, 우리 가족이 아니었다. 그린 얼굴들이 닮지 않았다. 사진과 똑같게 그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어설픈 데다 현실감이 나타나지 않았다. 얼굴 그리기를 배운 적이 없어 닮게 그릴 수가 없었다. 아내도 그림을 보더니 낯설어했다. 그래도 나를 늘 지지하는 터라 새롭게 보인다며 격려해 줘 넣을 수 있었다.



ⓒ 정승주  


         

지난 주말, 전 직장 후배의 딸 결혼식장에 갔었다. 함께 일했던 선후배와 동료들이 많이 보였다. 그중 한 분이 나를 보자마자 브런치에 쓴 글들을 읽었다며 반겼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에서 내 글을 찾아 주위 하객들에게 보여줬다. 역시 글보다는 눈에 먼저 띄어선지 모두 그림을 칭찬했다. 한순간이지만 내게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내 생일> 글에 넣은 그림마저 칭찬했다. 부족한 걸 아는 나로서는 더 쑥스러웠다.  

    

그림 그리는 걸 아는 지인들이 많아지니 자꾸 신경이 쓰인다. 이제 시간을 들여 그림그리기를 공부해야 하나 싶은 마음을 떨칠 수 없다. 한편으로는 글 잘 쓰는 것도 벅찬 데 하는 반대의 감정도 올라온다.  

   

하여 정말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내 솔직한 마음은 잘 그리면야 좋겠지만 배워서까지 하고 싶지 않다고, 대신 글은 잘 쓸 수만 있다면 배워서라도 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오로지 글쓰기에만 꽂힌 나를 다시금 확인했다. 쓸데없는 고민을 한 셈이다.  

    

그래서다. 나는, 청명한 가을 날씨에 걸맞게, 한껏 기분 내어 마음 가는 대로 타협했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닌 합리화하는 존재니까.  

   

그림 그릴 때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됐다. 기법을 배우지 않은 엉터리 솜씨지만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것으로 용기 내고 감사하자. 내 마음대로 그리는 불완전하고 설익은 방식이 독창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최면 걸자. 끊임없이 완전함을 소망하지만, 어차피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일 뿐. 부족함을 즐기자.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인데, 내 마음이 요술을 부려 글쓰기가 시들해지고 그림그리기에 빠질 때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림그리기야 그때 가서 몰두하면 돼. 카르페 디엠(Carpe diem)!  

   

그런데… 글쓰기도 부족하긴 매한가지인데… 내가 왜 쓸데없이 그림그리기를 고민하지? 알쏭달쏭한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가을을 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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