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by 사계

낯선 동네로 이사 온 지 딱 1년 정도가 지났고 다시 겨울이 되었다. 코로나19는 더 이상 거리 두기의 이름으로 우리의 삶을 조이기보다는 백신 접종과 개인 방역에 힘쓰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자리를 바꿔나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휴직 중이었고, 마음 한편에는 공백처럼 남아 있는 시간 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 틈에 필라테스를 막 시작했지만, 꽤 큰 비용과 불편한 예약 시스템, 왕복에 드는 시간이 자꾸만 내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그때 여름이 친구 엄마를 통해 아파트 상가 안 요가센터를 추천받았다. 1년 등록비가 91만 원에 오전과 저녁의 모든 수업을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초기비용이 크긴 하지만, 12개월로 나눠보니 정말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래 여기서 다시 시작해 보자.’

그중에서도 월, 수, 금 10시와 화, 목 11시의 ‘플라잉 요가’ 수업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안일을 대충 정리하고 나면 딱 맞춰 갈 수 있는 시간. 운명처럼 그 시간이 나를 끌어당겼다. 첫 수업 날, 천장에서 길게 내려온 해먹들이 마치 낯선 정글의 덩굴처럼 느껴졌다. ‘저기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발목 골절은 기본 아니야?’
머릿속으로 허무맹랑한 상상이 스쳤고, 발끝이 먼저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눈웃음이 참 따뜻한 선생님이 다가오시며 내 이름을 불렀다.
“반가워요. 이쪽 자리가 좋겠어요.”
거울 앞 정중앙 선생님 자리의 바로 왼편 연회색 해먹이었다. 처음 온 사람을 가장 앞자리에 세우다니!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만 쏠릴 것 같다는 생각에 안 그래도 말린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해먹에 몸을 감는 동작마다 어설픈 나의 몸은 자꾸 뒤로 빠지고, 중심을 잃는 순간이 반복됐다. 모두가 선생님의 동작 설명과 합을 맞춰 같은 동작을 만들어 낼 때 내 몸은 따로 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내 옆에 와 조용히 말해주셨다. “오늘은 이 동작까지만 해보자.”,“할 수 있어.” 해먹을 살짝 들어 올리며 내 몸을 ‘영차’하고 올려주시던 그 힘이 이상하게도 마음까지 단단히 바쳐주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셋째 출산 후 다니던 은행을 사직하고 요가 강사로 인생 2막을 멋지게 살고 계신 50대 여성이었다. 플라잉 요가를 전업으로 삼았다는 사실 자체가 삶의 도전과 용기를 말하는 듯 보였다. 나는 운 좋게 그런 선생님을 만나 플라잉 요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성인이 된 이후로 다양한 운동들을 시도해 왔지만, 몸치인 내가 초보 딱지를 떼는 데까지는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시간이 좀 더 소요되곤 했다. 그런 이유였을까. 그날도 조금 위축된 마음으로 조심스레 작은 동작 하나를 해냈는데, 등 뒤에서 뜻밖에 응원이 들려왔다. “써니 씨! 조금만 더~” “옳지” “잘한다.” “젊은 사람이라 금방 따라서 하네.” 60대 언니들의 목소리였다. 언니들의 다정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겨울밤 밍크 이불로 덮어뒀던 아랫목처럼 따뜻한 온기가 되어 내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 순간, 아주 작은 용기가 가슴속에서 불씨처럼 반짝였다. ‘나도 해낼 수 있을까?’

놀랍게도 이 클래스에서 40대는 막내 축에 속했다. 플라잉 요가 경력 7~8년 차의 60대 언니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웠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그분들 대부분이 어느새 경력 10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 나도 2026년이 되면 어느새 5년 차가 된다. ) 나보다 20여 년 앞서 살아온 인생 선배들은 나이는 그저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일 뿐이라고 말보다 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들의 꾸준한 움직임, 한 동작을 마친 뒤 입가에 번지는 여유로운 미소, 서로를 향한 응원, “아우~ 개운해. 오늘도 너무 좋았어”라고 말하는 태도는 내게 은근한 감흥으로 다가왔다. 그 꾸준함이 그들의 탁월함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직접 마주한 현장이었다. 자연스레 나의 아침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겨울바람 속에서도 요가센터로 향하는 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마음은 이전보다 환해졌다.

사실 코로나 이전, 비행이 없는 아침 시간은 버릇처럼 커피 약속으로 채우곤 했다. 육아 동지들끼리 모여 나누는 공감대는 끈끈했지만, 언젠가부터 ‘엄마’라는 이름이 내 정체성을 모조리 삼켜버린 것 같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헛헛함을 느끼곤 했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떠올리려 하면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멍해졌다. 나를 위한 시간은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힘들기만 한 운동은 핑곗거리를 찾아 “비행이 힘들었으니 오늘은 쉬자”라는 말로 금세 무너졌다. ‘꾸준함’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넘을 수 없는 커다란 장벽이었다.

하지만, 플라잉 요가는 내 몸의 근력을 키우기 전에 마음의 여유를 먼저 열어주었다. 조급해하지 않는 법, 남과 비교하지 않는 법,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를 조금 더 바라보는 법을 배워나갔다. 해먹에서 내려올 때마다 발목과 허벅지엔 어김없이 피멍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음은 멍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단단해지고, 조금은 든든해졌다고 느꼈다. 선생님의 격려, 언니들이 응원, 그리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요가센터로 향하는 그 반복은 어느새 나만의 루틴이 되어 있었다. 그 루틴은 내 삶을 아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바꿔놓았다. 아이들 뒤에 가려 보이지 않던 ‘나’라는 사람을 다시 들여다볼 용기를 주었다.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이 사치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 작은 실천들이 결국 나를 더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해 주었다.

돌아보면, 그해 겨울은 단순히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 계절이 아니었다. 차갑고 적막한 바람 속에서도 요가센터의 하루는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 해먹에 몸을 실으며 느껴지던 그 작은 흔들림, 수업 후 발걸음을 집으로 돌릴 때의 잔잔한 만족감. 그 모든 순간이 내게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다시 나를 살아봐도 괜찮아.”

지금도 나는 가끔 그 겨울의 공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해 겨울은 나의 삶을 조금 더 나답게 걸어가게 만든 아주 소중한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작가의 이전글뜻밖의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