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이야기하는 게 좋았다.
대학시절까지만 해도 늘 함께하는 친구들 무리가 있었고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때로는 투닥거리다 보니 어느새 졸업과 함께 사회에 던져졌다.
임용고시라는 외로운 싸움을 위해 철저히 혼자가 되어야만 했고, 더디게만 가는 시간의 정적을 끝내 견디지 못한 채 나는 다시 사회라는 망망대해에 표류하듯 떠밀렸다.
일로 만난 사람들과 하하 호호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할 친구는 없었다. 가끔 답답할 때 그저 혼자 코인 노래방을 찾아 목이 쓰리고 아프도록 노래를 불러댔다. 내게 남은 근심이 이 멜로디를 통해 공중에서 터지듯 사라지길 원했다.
그렇게 평생을 의지하고픈 사람을 만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가 생기면서 평생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내가 받는 것보다 줄 수 있는 게 너무도 많은 가족들에게 온 마음과 정성을 들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이의 하원을 위해 학원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아이를 마중 나온 엄마들로 이미 북적대고 있었다. 서로 처음 보지만 엄마라는 감투 덕분인지 인사하고 말을 거는 게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낯선 도시 낯선 동네에서 모두가 느꼈을 외로움을 그녀들은 아이를 통해 서로에게 닿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재택근무로 집에만 꼭꼭 갇혀 일하는 나는 어느샌가부터 혼자 일하며 거기에서 오는 정적에 이미 길들여져 있었나 보다. 누군가를 새로 사귀고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거 자체가 뭔지 모를 피로감으로 느껴졌다.
언젠가부터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은 나에게 마음을 쓰고 힘을 들여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내 서로 장난치는 아이들 속 유난히 외로워 보이는 내 아이를 발견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솟았다.
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 동생아, 애기 엄마들하고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돼?"
내 이야기에 웃을 줄만 알았던 동생이 사뭇 진지하게 답한다. 아마 언니가 오랜만에 건 전화에 간절함이 묻어났나 보다.
늘 어리게만 보였던 동생이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더니 이제는 육아 이야기까지 나눌 사이가 되었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동생의 조언을 귀 기울여 그다음 날부터 노력해 보기로 했다.
수줍게 건넨 인사가 자연스레 근황으로 이어지며 아이에게도 놀이터 친구가 생겼다.
세상엔 노력할 것이 참 많다.
때로는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할게 참 많다.
시작은 조금 어색할지라도 삐걱대며 보낸 일상이 되돌아보면 잘했다 싶을 때도 참 많다.
새로운 것에 크게 희열을 느끼지 않는 나이가 돼버렸지만 왠지 내 아이를 위한 도전은 이제 시작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