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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쩡 Dec 14. 2023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고려갈등사>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아는 만큼 귀에 들어오고, 귀에 들어오니 기분 좋고

기분이 좋으니 더 알고 싶고, 더 알려니 깊어지게 되고.

내겐 역사가 그런 것 같다.


학생 때는 역사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역사를 배워야 하는 목적과 이유가 배제되니 그저 암기과목 중 하나로만 여겨졌다. 유구한 역사들만큼이나 무수히 많은 인물내게 기억해야 할 중요성보다 기억해야 할 점수였다.


성인이 된 후 접한 역사책, 역사 강연들을 보면서 지난날 역사를 등한시했던 나 스스로를 반성했다. 역사는 그저 스쳐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여기 있기까지의 흔적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제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생기니 영화보다 더 역동적인 옛이야기들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몰입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요즘 고려거란전쟁이라는 역사 드라마가 한창 방영되고 있다. 최수종은 곧 왕이라는 인식이 뚜렷하게 박혀있는데 이번엔 왕이 아닌 강감찬 장군역을 맡았다고 한다. 분명 주인공인데 왕의 역할이 아니라 장군이라고?


강감찬 장군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그를 주인공으로 풀어내는 역사 이야기의 흐름이 궁금해졌다.

그때쯤 운 좋게 이 고려갈등사를 접했다.


태정태세문단세... 아직도 머릿속에 박혀있는 주입식 교육의 흔적은 조선시대 왕의 계보이다. 사실 고려시대 왕의 계보는 잘 몰랐다. 500년 고려실록의 긴긴 역사만큼 고려의 왕들 역시 많지만 책의 제목처럼 안정된 왕권이 아닌 갈등의 왕권이다.


저자는 삼국통일 후 고려의 '통합'부터 고려의 기득권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수성', 무신정권으로 얼룩진 고려의 '폭발', 마지막으로 기득권의 권력을 내쫓고 사회정의를 구현한 '이행'의 역사로 나누었다.


삼국통일 이후 고려의 길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역사였다. 내부로는 기존 세력과 신흥 세력과의 마찰, 위로는 여진과 원의 계속되는 침공과 요구, 아래로는 왜구의 침입까지. 가까스로 통합한 고려의 역사는 여기저기 뜯기고 상처 입은 흔적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한 민중의 노력과 애환은 계속해서 느껴진다.


분열은 새로운 통합과 새 시대로의 전진을 뜻하니 고려의 멸망으로 조선시대의 서막이 열렸으나 그 지나온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음을 눈으로 확인하니 왠지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 500여 년 역사를 책 두 권만으로 담아내기엔 한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을 바탕으로 담백하게 쓰인 글인데도 끊김 없이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때론 유쾌한 농담보다 진정한 위로가 제 힘을 발휘하듯 저자의 담백한 서술이 더 묵직하게 다가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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