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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쩡 Dec 28. 2023

마음의 위기를 다스리는 철학 수업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나이 40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있었다.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마흔의 찰나눈앞에  생각보다 덤덤하다. 하지만 조금 더 의미 있게 40대를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주문하게 되었다.


사실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는 이름만 들어봤지 잘 몰랐다.

그간 인문 철학 책은 곧잘 읽었음에도 이토록 유명한 철학자를 잘 몰랐다는 것에 반성도 되었다. 그동안 읽었던 철학책은 누구 한 사람의 사상과 견해라기보단 그리스 로마 신화나 여러 서양 철학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라 철학자 개개인의 면모를 기억하기엔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10대, 20대를 보내고 30대를 보내야 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늘 위기라 여겼던 순간들은 그렇게 큰 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단순히 위기 자체보다는 이를 곱씹고 상상해 더 커져버린 위기의 신기루가 더 길고 무겁게 느껴진 탓이다. 그때 그 시공간에서는 그렇게도 허우적거렸는데 왜 지금처럼 조금 더 일찍 깨닫지 못했을까?


그건 그때가 틀렸던 게 아니라 아직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준비가 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구구절절 공감이 가서 잔뜩 밑줄을 치며 읽었는데 두 번째 읽을 때는 나 스로를 조금씩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자살을 찬미한 염세주의자로 불렸던 쇼펜하우어.

이 책을 보면 그가 찬미한 건 자살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삶에 대한 확고한 지를 찬양했던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된다.


우리 모두는 늘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행복을 추구하라는 말보다 고통을 줄여나가라고 조언하는 그의 말이 와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마흔 즈음이 되고 보니 알 것 같다.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그는 삶을 끝없는 고통과 번뇌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삶에 대한 의지가 있는데 우리는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기에 계속해서 번뇌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통의 충족에 오는 잠깐의 찰나인 행복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늘 고통과 번뇌 속에서 살아간다.

사실 늘 웃고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고 자부하지만 행복이란 녀석보다는 고통의 그림자가 훨씬 더 오래 그리고 묵직하게 기억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고통은 인간이 살고자 하는 삶에 대한 의지에서 기인했고 이 의지가 충족되지 않는 유한한 삶을 이미 알고 있는 인간이기에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기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오히려 생애 삶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 삶의 의지에 대한 상심이 너무 큰 나머지 잘못된 선택을 한다고 말한다. 이는 남겨진 가족과 후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게 되니 결국은 당사자 자신의 고통만 빠져나가려고 한 비겁한 선택인 것이다.


그는 삶이 계속되는 고통과 번뇌의 연속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헤쳐나가는 방법으로 교육과 교양을 언급한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격은 바꿀 수 없지만 후천적으로 독서나 철학, 음악, 미술 등을 통해서 사유하고 자신의 기준을 보다 확고히 할 것을 당부한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끊임없이 외부 세계에 집착한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이전에 어떤 무리에 속하지 않음을 외로움과 고독으로 치부한 채 그 무리에 속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나의 주관과 개성이 그 무리 속에서 으깨지더라도 그저 함께해야 안정된다는 착각의 환상에 늘 노출된다.


사실 나 역시 그랬다. 밝은 성격과 사람을 좋아하는 탓에 주변에 늘 사람이 있었지만 어느새부턴가 주변이 휑해졌다. 깊은 슬픔에 빠져있을 때 속내를 털어놓을 가까운 친구조차 없다는 사실에 인생의 패배자가 된 착각마저 들었다.

나는 그럴수록 책을 많이 읽었고 더 깊은 시름에 빠져들기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법을 터득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해가 지날수록 자존감도 높아졌고 지금은 그 누구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직접 경험해 보았기에 그의 말에 누구보다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내 관점에 변화를 준건 독서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동안 다양하게 그리고 많이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왔는데 저자는 오히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스스로 사유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자신의 확고한 주관 없이 그저 남의 생각과 의견만을 쫓는 것을 남이 버린 음식과 옷을 먹고 입는 것에 비유하며 단순히 많이 읽기보다 자신의 생각이 의심될 때 양서를 읽으면서 조금 더 깊게 사유하라고 말한다. 또한 양서의 기준은 사물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담은 책이지 다른 이의 말을 자신의 것처럼 옮기는 것도 상업적 목적을 쫓는 것도 경계하라고 지적한다.


40대 중반에야 빛을 발하며 후대에 니체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에 영향을 미친 쇼펜하우어. 유복한 가정 탓에 굶주림을 배경으로 글을 쓴 철학자는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빈자와 부자의 중심에서 정도를 지켜야 행복하다는 것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이야기해 줄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가난한 자는 궁핍의 고통으로 부자인 자는 권태로 인한 무력감으로 양 극단에서 아우성치게 되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그저 삶이 유한한 인간이기에 고통은 끝이 없음을 인정하고 그 고통을 줄여나가면서 남은 생을 즐길 것을 당부한다.




마흔을 앞둔 연말에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고 참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연말에 특별한 계획 없이 똑같은 1월 1일을 맞이하는 것에 약간의 죄책감도 있었는데 오히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해를 맞이할 생각에 설렘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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