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너의 손
매일 저녁 아이는 내 귀를 잡은 채 잠이 든다.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미 오래되었다.
처음에는 내 귀를 만지작 거리고 오래지 않아 잠들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점점 크면서 오히려 그 빈도가 늘어갔다.
혹여 피곤해 잠 못 들거나 예민해 중간에 살짝이라도 깨면 어김없이 내 귀를 만지작 댔다.
어느 날은 새벽 내 이어진 귀 마사지에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 아이의 손을 휙 하고 세게 뿌리쳤다.
온 얼굴의 주름을 한껏 쥐어짠 채 제발 그만 좀 하라며 짜증을 내었다.
그때는 그저 피곤한 내 감정에 집중하느라 잘 몰랐는데 아침이 되니 불현듯 지난 감정이 떠올랐다.
' 내가 아이 손을 너무 세게 뿌리치지 않았나? '
' 아이는 그냥 자다가 잠꼬대한 건데 내가 너무 짜증을 부렸나? '
이제는 매일 밤 자기 전에 아이에게 주문을 걸듯 이야기한다.
" 오늘은 엄마 귀 만지지 말고 한번 자볼까? "
어느 날은 인형을 안고 자보기도 하고,
어느 날은 귀걸이를 하고 자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등을 돌리고 자보기도 하면서 여러 시도를 해봤다.
완전히 고쳐진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그 빈도는 조금씩 줄기 시작했다.
문득 아이가 태어나고 난생처음 분리 수면을 시도하던 날이 생각난다.
프랑스 육아법에 관한 책을 보고 '그래, 오늘 분리 수면을 당장 시작해 봐야겠어!'라고 마음먹었었다.
아이와의 완벽한 분리 수면을 위해 아이가 울어도 절대 열지 말고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려 보라고 했던 것 같다. 홈캠으로 방 안을 살피면서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전전긍긍했던 그 불안의 온도가 다시금 생각났다. 그렇게 독하게 마음먹고 여러 번을 시도했고, 결국 100일이 채 되기도 전에 아이와의 분리 수면에 성공했다. 육아란 그저 시간이 자연스레 지나는 것일 뿐 내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분리 수면에 성공하고 나니 괜스레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아이가 크면서부터 부부 침대 옆에 아이 침대를 붙여 놓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아이와의 분리 수면은 다시 허물어졌다. 그때는 애써 쌓은 노력이 물거품 된다는 생각보다 잠자는 아이를 계속해서 지켜볼 수 있음에 행복했다. 매일매일을 봐도 예쁘고 기침 한번 뒤척임 한번 할 때마다 살아있는 인형을 보는 것처럼 기쁘기만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이와의 동침이 시작되었고, 당시 일찍 출근하는 남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와 나는 다른 방에서 함께 자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에게 최근에 " 이제 너도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혼자 자야 해! "라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싫다고 엄마랑 계속해서 함께 자겠다고 칭얼댔다. 잠시 힘들겠지만 그래도 아이의 독립과 성장을 위해 어떻게든 노력해야만 했다. 하지만 싫다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또다시 마음이 약해지고 만다.
' 그래, 내일부터 시작해 보자... '
그렇게 차일피일 피곤함을 핑계로 미루다가 오늘도 아이와 함께 잠을 청한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이의 독립성은 핑계이고 계속해서 아이를 곁에 두고 싶은 내 욕심은 아닐까. 아직은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큰 나머지 그저 내 수면만 방해받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가 비슷하다. 수학은 답이 정해져 있어서 좋다고.
육아도 답이 있었으면 좋겠다.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처럼 길게만 느껴지는 육아는 페이스 조절조차 쉽지 않다. 책, 유튜브, SNS를 통해 정답을 찾아 헤매지만 육아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내 아이와의 쌍방 통행이므로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어렵다.
이제 다시 한번 분리 수면을 시도해 봐야겠다.
아직은 둥지를 떠나 자유롭게 나는 모습을 보기보단 내 품 안에 두고 보고만 싶은 아이지만,
아이와 나 모두의 행복과 미래를 위해 작은 용기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