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더 떨리니
'어쩜 시험을 보는 아이보다 내가 더 떨릴까?'
아이가 태권도를 한지 꼭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
드디어 국기원 승급 심사 일정이 잡혔다.
태권도를 다니면서 꼭 한 달이 되는 시점에 늘 띠 색깔이 바뀌곤 했고, 아이들 역시 띠 색깔을 통해 각자의 실력을 아는 듯했다. 미처 수업 일수를 채우지 못해 승급 심사에 떨어질 때면 친구들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에선지 내심 속상해했다.
그렇게 그동안 빨간색 띠를 따기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거쳐왔다. 그동안 아이의 소개를 통해 온 새로 들어온 친구들도 하얀색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띠 색깔이 바뀌었다.
빨간 띠인 우리 아이는 이제 심사 전에는 더 이상 올라갈 띠가 없어 몇 달을 빨간색으로 머물러 있었고, 그러는 동안 새로운 친구들 모두 빨간 띠를 갖게 되었다. 아이도 자신이 제일 오래 다녔는데 모두 같은 띠가 되자 빨리 1품이 되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실전이다. 진정 실력이 띠 색깔을 바꾸는 시기가 온 것이다. 처음에는 부모인 나 역시 이렇게 어린아이들이 보는 승급 심사인데 크게 어렵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장님이 보내주신 시험 연습 영상을 받고는 이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걸 다 외워야 한다고...?'
'이걸 우리 아이가 다 해낼 수 있을까...?'
내가 봐도 동작이 비슷한 듯 조금씩 달라서 더 어려워 보였다. 이것을 모두 외우고 당일에 정해지는 범위를 통과해야만 한다. 그렇게 아이의 저녁 연습은 시작되었다.
일을 하는 부모 때문에 6시 30분에 태권도 학원을 마친 아이는 10분 잠깐의 휴식을 가진채 7시 30분까지 꼬박 3시간을 태권도 장에 있었다. 관장님께 아이가 너무 배고파하니 간식만 잠깐 먹을 수 있게 부탁을 드렸고 아이가 잊어버리지 않는 날이면 조금의 간식을 먹고 연습을 이어갔다. 아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분주하게 달려갔고 오랜 연습으로 지치고 배가 고픈 아이는 기운은 없지만 반가운 입꼬리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렇게 한 달여 간을 열심히 연습했던 아이의 수고를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드디어 코 앞으로 다가온 시험이 더 떨렸다. 아침 7시까지 태권도장에 집합해야 했기에 오랜만에 주말 아침 일찍 알람을 맞추어 놓았다.
혹시라도 못 들을라 여러 개를 맞추었다. 그렇게 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새벽 5시에 잠깐 깼다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드디어 심사날 아침이 밝았다. 다행히 늦지 않았고 아이를 태권도 학원에 데려다주었다. 이후 학부모도 참관하려면 늦지 않게 오라고 했기에 남편과 부랴부랴 준비해 태권도 심사 하는 곳을 찾았다. 교통 혼잡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한 우리는 역에 내리자마자 차량으로 꽉 차버린 주차장과 주변 주택가를 보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우와... 오늘 이 지역 태권도 하는 애들은 다 왔구나....'
나도 이렇게 생경한 장면인데 이렇게 큰 태권도 심사를 앞둔 우리 아이는 얼마나 떨릴까. 아침 일찍부터 졸린 눈을 비비고 비몽사몽 아직 잠이 덜 깨지는 않았을까. 이제껏 열심히 연습했는데 떨려서 동작을 잊어버리면 어쩌지.
아직 아이를 보기도 전에 수많은 인파 앞에 엄마의 불안은 시작되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아이들의 연습 현장을 찾았다.
같은 하얀색 도복을 입고 제법 비슷비슷한 키를 가진 수많은 아이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한 채 한창 연습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이 많다 한들 내 자식을 못 찾을까.
불과 몇 시간까지 내 옆에서 잠든 아이였건만 며칠은 못 본 것처럼 무척 반가웠다. 하지만 소리 내지 못한 채 온몸으로 숨죽여 응원했다.
연습이 끝나고 실전 대회에 응시하기 위해 다른 층으로 이동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대회 순서가 적힌 심사표를 팔뚝에 맨 채 각자의 자리에서 대기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피곤과 긴장이 뒤섞인 아이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짠해 보였다.
'이렇게 너도 또 한 뼘 성장하는구나.'
하고 뭔지 모를 애잔함과 뭉클함이 밀려왔다.
아직은 어린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정면으로 맞서고 당당히 책임질 정도로 성장했구나.
피곤해하지만 자신 있다고 말하며 엄마를 안심시키는 아이를 보니 그전까지의 불안과 긴장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래, 아이도 이렇게 용감한데 엄마가 불안을 주면 안 되지.'
오래 기다렸지만 아이는 긴장하지 않았고 피곤했을지언정 몸은 그간의 연습을 배신하지 않았다. 결과는 빠르면 2주 후에 나온다고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미 통과다.
모든 심사가 끝나고 우리를 마주한 아이가 씩 하고 웃는다.
요즘 부쩍 자란 키와 작아진 신발을 보며 새삼 아이가 성장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오늘 아이의 첫 대회를 가까이 지켜보면서 우리 아이가 비단 몸뿐 아니라 정신도 한 뼘 성장했음을 느꼈다.
나 역시 큰 시험을 치른 것처럼 홀가분했고 오랜만에 숙면했다. 앞으로 우리 앞날에 더 많은 도전이 찾아오겠지만 언제나 너의 옆에서 믿고 응원해 주겠노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