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싫어, 친구 좋아

by 메이쩡


" 나 엄마랑 노는 것보다 친구랑 노는 게 더 좋아.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아. 엄마 미워. 엄마 싫어.

나 지금 나갈 거야. 친구 가면 어떻게 해 빨리 으앙~~! "


우리 집 8살 꼬맹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

저녁 8시가 다 되었는데 놀이터에 가겠다고 생떼를 부린다.

예전보다 해가 길어졌지만 8 시인 금은 이미 밖이 어둡다. 그럼에도 친구랑 놀기로 했다면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엄마에게 울음 섞인 투정을 토해낸다.


직 핸드폰이 없는 아이들이기에 시간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아이 말만 믿고 저녁 늦게 놀이터에 나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처음엔 아이의 울음소리에 놀라 진정시키려 했지만 뒤이은 아이의 말이 나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엄마 싫고 친구가 더 좋아'

물론 아이도 속상해 내뱉은 아직은 여물지 않은 표현이라 대충 넘어갈 수도 있지만 서운했다.


회사가 끝나고 집에 오면 7시.

누가 밥이라도 차려주면 좋으련만 허기진 얼굴로 나를 반기는 가족을 위해 겉옷만 대충 벗고 주방으로 향한다.

저녁이 너무 늦으면 안 되기에 서둘러 밥상을 차리고 후다닥 먹어도 8시가 다 되어간다.


예전에는 이렇게 밥 먹고 아이를 씻기고 아이와 공부하고 아이와 놀고 아이와 책 읽고 그리고 잠을 자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생이 되면서 부쩍 친구들과 어울리더니 우리의 반복된 일상도 조금씩 틈이 생겼다.


아이가 크면서 변화야 당연하겠지만 그래서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 있지만 갑작스러운 아이의 반응에 머리가 멍해졌다. 아이가 친구와 얼마나 놀고 싶은지보다 엄마가 밉고 싫다는 말에 서운해 더욱 아이를 다그쳤다.


엄마의 머릿속엔 깜깜하고 외로운 놀이터만 보이는데 아이의 머릿속엔 그저 친구들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낳았지만 나와는 다른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이기에 어쩌면 아이가 보는 걸 나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고집을 부리며 울고 불고 떼를 쓰면 그저 그 보이는 행위에 집중해 다그치곤 했다. 엄마보다 친구가 좋다는 그 말이 서운하고 믿고 싶지 않아 외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이가 말을 잘하는 순간부터 아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내 시선으로 해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표면적으로 드러났지만 아직은 영글지 않은 아이의 표현을 나의 렌즈로 해석하니 서운하고 속상한 것 투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앞으로 내가 경험 많은 어른, 지도의 의무가 있는 부모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의 숨겨진 마음도 들여다봐야겠다고.


게 나와 내 아이의 시선이 함께 머무르는 그 시간과 공간이 여유롭게 찾아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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