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렸을 때 가장 어려웠던 것 중의 하나가
아이의 목욕이다. 특히 머리 감기기.
눈에 거품이 들어갈라치면 그 어린 마음에도 소리를 꽥꽥 소리를 지르며 움직여댔다. 얼굴에 물이 흐르지 않게 하려고 각종 튼튼하다는 샤워캡을 여러 개 사서 시도해 보았지만 자꾸만 미끄러져 내려가는 탓에 여전히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우리 부부는 집안일을 나누어해도 아이 목욕 시키는 것을 내심 큰 비중으로 두었다. 누군가 목욕을 시키면 남은 이는 그에 응당한 두세 가지 집안일을 군말 없이 해내곤 했으니까.
어느덧 아이가 커서 유치원생이 되었다.
어느 날 문득 티브이를 보는데 어느 연예인 엄마가 나와 아이 목욕을 시키고 있었다. 우리 아이와 얼핏 비슷한 나이 같았는데 그 엄마는 샤워캡도 없이 아주 터프하게 샤워기 하나만 들고 아이 목욕을 시키고 있었다.
아이는 이 상황이 익숙한지 눈만 질끈 감은채 능숙하게 엄마의 속도에 맞추고 있었고 순식간에 아이의 목욕은 끝이 났다. 그것도 아주 조용하고 평화롭게.
우리 집에선 있을 수 없었던 아주 생경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왠지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아니 이젠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언제까지고 불면 날아갈 꽃잎처럼 조심스러워만 할게 아니라 필요하다면 조금씩 변화를 주어야지 하고. 목욕이란 부모와의 또 다른 행복의 소통 시간인데 언제까지고 이렇게 목욕에 대한 긴장감으로 조심스러워만 할 수는 없다고.
그렇게 그날 저녁부터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샤워캡도 없이 아이를 목욕시키기 시작했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쏟아지는 물세례에 아이는 살짝 당황해 처음에는 울고 불고 난리였지만 시간이 좀 흐르자 이젠 어찌할 수 없음을 알았는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도 속으로는 긴장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이젠 형아처럼 용기를 내 보자며 아이를 응원해 주었다.
정확히 그날 이후부터 우리의 목욕시간은 아주 많이 단축되었고 아이 목욕에 대한 긴장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아 진작 이렇게 할걸이라는 아쉬움과 지금이라도 시도해서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렇게 유치원 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지만 아직은 유치원생 같은 아이. 그런 아이가 어느 날은 자기 혼자 씻어 보겠다고 한다. 에이 설마 아직 그게 가능하겠어? 하고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 엄마 진짜 나 혼자 씻어볼게. 문 좀 닫아줘 봐."
" 알았어. 엄마 앞에 있을 테니까 필요하면 불러."
" 응 알겠어."
바로 열릴 것만 같은 문이 열리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에 살짝 문을 열었더니 내 예상과는 달리 아이가 정말 스스로 샤워기를 잡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샤워를 하고 있었다. 물에 감긴 눈을 하고도 꽤나 꼼꼼하게 잘한다. 순간 놀랍기도 하면서 대견하기도 하면서 지난날 이곳에서의 목욕 전쟁이 옛 추억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아이는 스스로 로션도 바를 거라며 지켜봐 달라고 했고 그 혼자 해냈다는 보람을 느끼게 해 주고자 역시 한발 물러나 있었다. 조막만 한 손에 로션을 짜더니 춤을 추는 듯 로션을 바르는 듯 몸부림쳤다.
" 우리 친구 혼자서 목욕한 거야?
와~ 정말 대단한데?"
아이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는지 그날 이후 여전히 혼자 목욕을 한다. 아이를 목욕시키는 어느덧 당연해진 일상 한 조각이 빠지자 시원함만 있을 줄 알았는데 왠지 모르는 서운함에 흠칫 놀랬다. 아이가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지는 게 당연하면서도 이젠 내 역할이 줄어든다는 게 기쁘기보다 아직은 서운한가 보다. 그래도 이 또한 얼마 남지 않았겠지, 그리고 다 지나가겠지 스스로 위로해 본다.
아이가 휩쓸고 간 욕실은 이미 천장이며 바닥이며 문이며 온 사방이 물로 도배가 되어있지만 난 그저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을 뿐이다.
' 그래, 오랜만에 욕실 물청소한셈 치지 뭐. '
스스로 웃으며 위로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