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을수록 가벼운 지갑

by 메이쩡


결혼 전에도 사치를 하는 편은 아니었다.

가끔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며칠이 지나도 계속 생각이 나고 필요하다 싶으면

그제야 그간 쌓였던 내적 친밀감을 앞세워 구매했다.


처음엔 돈 걱정에 스트레스가 되었지만 일단 결제를 하고 나면 묵은 체증이 실려나가는 듯 후련하고 기분이 좋았다.


평소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한 달에 한번 월급날만 기다렸고 살짝 부담 있는 금액이면 일 년에 한 번 생일날만 기다렸다.

왠지 그날만큼은 나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 같았고 죄책감도 덜했다.


그렇게 일과 소소한 사치를 저울질하며 걸어왔는데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뀌더니 나의 소소한 일상에도 큰 균열이 생겼다. 미미한 진동도 아닌 마치 지각변동 수준으로.


어느덧 나를 위한 소비는 없고 아이를 위 소비만 남았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아이가 원하는 게 없으니 아이에게 필요할 것 같은 것을 샀고, 아이가 점점 크면서 제법 말을 잘하게 되자 아이가 사달라고 하는 것을 샀다.


' 꼭 필요한 것만 사줘야지. 나중에 아이가 올바른 소비습관을 가지려면 가지고 싶다고 다 사주어선 안돼 '


분명 머릿속에선 나름의 논리로 밀어붙이고 있는데 순간 이걸 가지고 행복해하는 아이의 얼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구매하고 있었다.


물론 나름의 가격 상한선을 두었지만 이 작은 소비들이 쌓아 올려질 높다란 동산은 아예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에겐 언젠가 높다랗게 쌓일 저 소비 동산보다 지금 내 아이의 환한 웃음과 행복이 더 크게 보였니까.


아이는 아침 7시 쿠팡 아저씨의 장난감 선물을 기다리며 설레어 잠들고, 이른 아침 깨우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웃으며 일어난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잠들어있던 내 동심과 엄마로서의 행복이 같이 느껴져 함께 웃고 거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방을 청소하는데 과거 아이 행복의 전부였던 장난감들이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

뒤섞인 장난감들을 꺼내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분명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고, 아이가 너무 갖고 싶어 했고, 부피도 그리 크지 않고 등등 온갖 사줄 이유들이 넘쳤었는데 지금 저 장난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실제로 가지고 논 것도 며칠 되지 않았고 아이에게 벌써 잊힌 게 수두룩했다.


순간 아이의 환한 웃음도 좋지만 지갑이 더 얇아지기 전에 아이의 소비 습관이 더 잘못 들기 전에 엄마인 내가 먼저 정신 차리고 절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 안 사준다고 칭얼거리고 서운한 얼굴로 나를 대할지언정 이제 안 되는 것은 안된다고 해야지. 안 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만한 나이니까 지금 이야기하지 않고 나중에 고치자면 우리 둘 다 힘들어질 거야. '


그렇게 마음먹은 어느 날 아이가 무엇을 사달라며 나를 졸라댔다. 딱 봐도 하루이틀이면 잊힐 것 같았다.

가격은 저렴해 보이지만 저걸 하나 사면 분명 다른 캐릭터들도 이어서 살 것이다. 저 한 개의 가격이 아니라 시리즈로 보자 하니 끝도 없이 지갑이 열릴 게 분명했다. 그리고 가격보다 중요한 건 정말 필요 없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저걸 받으면 아이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겠지만 이젠 아니다.


' 아이가 얼마나 생떼를 부릴까?

울며 불며 계속 고집부리면 어떻게 하지?'


속으로는 걱정이 앞섰지만 나름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저걸 사면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면서도 그래도 먹히지 않을 거라는 불신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처음에 조금 칭얼되더니 얼마 못 가 단념한 듯 덤덤하게 말한다.


" 엄마, 그럼 그거 안 살래. 대신 그림으로 그려줘."


분명 울며 불며 생떼를 부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 외의 반응에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칭찬해 주었다. 아이가 이젠 제법 컸다는 게 실감 나면서 대견하게 느껴졌다.


내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달리 행동하지 않으면 나도 아이도 모두 변하지 않겠구나.

시간이 흐르면 고쳐지겠지 하고 내려놓은 채 아무런 노력도 않으면 의미 있는 변화는 저절로 찾아오지 않겠구나.


그간 저 미소에 행복해져 고민도 없이 지갑을 열었다.

울고 떼쓰는 모습이 싫어 마지못해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이젠 아이가 제법 자란 만큼 잠깐의 기분만으로 소비해선 안된다는 것을 계속해서 알려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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