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나 손이 간지러워. "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커피 한잔을 사기 위해 아이에게 산책을 권했다. 산책이라 쓱ㆍ 엄마 커피 한잔이라 읽는 짧지만 매우 소중한 이 시간.
아이가 어렸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시간일 텐데 어느새 초등학생이 되어 제법 엄마의 부탁도 들어주면서 가끔은 데이트 기분도 나게 해 주다니... 그간 포기하며 견뎌온 수많은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순간이다.
헌데 그런 아이가 갑자기 자전거를 멈춘 채 손을 내 보인다. 어라???? 이게 뭐지....? 설마........??
감기 한번 잘 걸리지 않는 아이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었으니 바로 수족구 씨. 누가 봐도 수, 족 그리고 구까지 번져 있는 빨간 반점들은 엄마인 내게 이 정도인데도 몰랐단 말이야?라고 말하는 듯 강렬하게 돋아나 있었다. 그러게... 이 정도였으면 분명 증상이 있었을 텐데... 얘는 아프지도 않았나...?
마침 일요일이라 근처에 문 연 소아과도 없어 급하게 택시를 불러 옆 동네 소아과를 찾았다. 매 주말마다 장 보러 들르는 마트 안 병원. 늘 아이들로 바글바글 했던 병원이었는데 다행스럽게 우리가 간 날에는 대기 없이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진료를 보지 않았어도 이미 알 것 같은 진단명, 결국 수족구를 진단받고 일주일간 학교 그리고 돌봄 센터를 갈 수 없다는 내용이 한 장의 종이에 빼곡히 담겼다.
특수한 상황이었기에 평소 같았으면 회사에 사정을 구하고 재택근무를 했겠지만 하필 돌아오는 주는 새벽 강연 운영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일이고 대신해 줄 사람도 없기에 내가 꼭 가야만 하는...
이성을 찾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부탁할만한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아이 친구 엄마들? 영유아도 아니고 다들 아이들 보내고 각자의 할 일이 있는데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입도 안 떨어졌다. 예전에 휴대폰에 깔았던 어플들을 뒤져 보았다. 가만 오전 8시부터 내가 돌아오는 시간까지 넣어 보자... 뭐? 16만 8천원???? 원래 이렇게 비쌌나?
예전에 한번 이용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내가 출근하고 아이 등원만 보내는 거라 2시간 남짓의 시간에 대한 비용이었기에 2만 원 정도였는데.... 당연히 잠깐 등하원도 아니고 종일 돌봄이면 비싸지.... 세상물정을 너무 몰랐나 싶어 속상했고, 돈으로 세울 수 있는 대안 역시 없을 것 같아 더 속상했다.
그래, 오전 강연만 금방 끝나면 되는 거니까 아이랑 같이 회사에 가자. 방해 안되게 회의실에 잠깐 기다리게 하고 회사 동료에 부탁해보는거야. 그렇게 마음먹고 누웠는데 왜 이렇게 잠은 안오는지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왕복 4시간... 나야 오가면서 책도 읽고 영어 공부도 하고 나름 효율적으로 보내는 시간이긴 한데... 운전도 못해 대중교통으로만 다녀야 하는데 아이를 데리고 이 시간 동안을 오가야 한다니...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요즘 날이 더운데 그동안 아이 컨디션이 나빠지면 어쩌지?
하지만 내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연신 싱글벙글 웃는다. 드디어 엄마 회사에 따라간다며 곁에서 콧노래를 부른다. 그전부터 엄마 회사 한번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아이였는데 그래서 언젠가 한번 데려가야지 하고 마음만 먹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가게 될 줄이야. 다행히 일찍 출근하는 동료가 있어 이야기했더니 흔쾌히 아이랑 같이 있어 주겠다고 했다. 평소에도 고마웠던 친구였는데 그날따라 더욱 고마웠다. 언젠가 그녀가 내게 어떤 부탁을 하면 내 꼭 들어주겠노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드디어 그날이 밝았다!
아이 손을 잡고 서울을 가본 적은 있어도 회사까지 온 적은 처음이기에 걱정반 설렘반이었다. 왠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이에게 내 일터를 보여준다는 게 조금은 설레기도 했다. 어떤 반응일까? 오늘 이후에 엄마의 직장 그리고 엄마의 일에 대해 아이는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도착하기도 전에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처음 1시간 정도는 싱글벙글 따라오더니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갈아타고부터는 조금씩 힘들었나 보다. 언제 도착하는 거냐며, 아직 도착 안 했냐며 1분 단위로 위치를 물어왔다. 그럴 만도 하지. 지금 보통의 컨디션도 아니고 몸까지 아픈 상황인데, 더 힘들겠지...
그래도 제법 성장한 아이의 인내력(?) 덕분에 무사히 회사에 도착했고, 마음씨 좋은 동료 덕에 아이 걱정 없이 일도 잘 마칠 수 있었다. 일이 끝났다는 후련함보다 아이와 되돌아갈 걱정이 앞섰지만 그래도 한 고비는 넘겼다 싶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를 데리러 동료와 함께 있던 회의실로 찾아갔는데 그 주변 회의실을 찾아가려고 기웃거리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 어머, 우리 회사에 웬 아이가 있지?" @.@
휘둥그레 주변을 둘러보는 사람들을 뚫고 민망한 듯 문을 빠르게 열고 들어갔다. 아이는 그제야 나를 보며 웃는다. 훗 분명 처음 보는 이들과 수줍어서 말도 잘 안 했을 것이다. 나와 있을 때는 그렇게도 수다스러운 아이가 부끄러워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사진으로 볼 때보다 실제 보니 아직 아기 같다며 어떻게든 말하게 하기 위한 어른들의 처절한 노력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 잠깐의 시간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걸 알기에...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2시간여를 집에 되돌아가야 한다. 아이도 힘들게 온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 보는 사람들에 둘러 쌓인 긴장감 때문인지 아침에 보았던 싱글벙글함은 온데간데 없었다. 제발 더 힘들어지지 않기를, 집에 도착할 때까지 더 나빠지지 않고 잘 지나가기를 바랐다.
"오늘 엄마 따라오니까 어때? 엄마는 오늘처럼 매일 이렇게 회사와 집을 왔다 갔다 해. 하지만 집에 가면 너를 만날 생각에 하나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설레는 마음이야. 그래도 엄마가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구나 생각하면서 엄마 말 좀 잘 들어줄 수 있겠니?."
이 하루의 여정으로 엄마의 노고를 알아준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아이의 기억에 오늘 하루는 큰 기억으로 남겠지?
모든 것이 낯설고 갑작스러운 하루였지만 나만 아는 이 공간을 내 아이와 처음으로 공유했다는 경험이 나쁘지 않았다. 오늘은 엄마가 아닌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고 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음에 엄마 회사 친구들 만나면 오늘 부끄러워서 이야기 못한 거 꼭 말해줘야 해? 라고 말하니 수줍은듯 알겠다 하면서 금세 잠들어버렸다.
그런데 그런 날이 또 오면 어쩌지.....?
호기롭게 뱉었지만 연이은 걱정에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