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것>
소아정신과 의사이자 두 아들의 엄마인 신의진 교수.
그녀가 말하는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고 당당하게 일하는 법이 궁금했다.
저자는 어렸을 때 큰 아들의 틱 증상으로 여러 난처한 일들을 겪으면서 여자와 아내 그리고 의사의 역할 사이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의사로서 중요한 시기에 찾아온 둘째 아이는 축복에도 마지않을 상황에서 다양한 이기심들에 눈치를 봐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불가능한 것은 주변에 도움을 구하며 현명하게 자신의 커리어를 지켜낼 수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소중한 내 아이지만 내 맘대로 통제가 되지 않기에 엄마로서 통제할 수 있는 건 오롯이 자기 자신뿐이다. 결국 엄마는 일을 포기하고 아이에게만 집중해야겠다는 쉽지만 어려운 결론에 이른다.
세상 밖에서 훨훨 날아다녔던 엄마는 이제 둥지 안에서 자라나는 새끼만 살피게 되고 그렇게 엄마의 꿈과 세계는 둥지 안 새끼에게만 머무르게 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이제 3개월 차.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아이가 학교생활은 잘 적응할지, 돌봄 교실에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학원은 다녀야 할지 등등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지의 세계는 그저 걱정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학교에 빨리 가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안심이 되고 자기 전에 오늘 하루를 브리핑하듯 종알대는 아이를 보며 나 역시 하루를 되새김질한다.
이 책에서 가장 와닿은 부분을 꼽으라면 바로
모든 것이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슈퍼우먼 콤플렉스를 내려놓고 내가 해내기 어려운 것은 주변의 도움을 구하라고 말한다.
실제로 자신의 수많은 역할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빠져 결국 번아웃에 빠지는 엄마들이 많다. 몸만 아이 곁에 있을 뿐 안팎으로 지쳐 우울감에 가득 찬 행복하지 않은 엄마는 오히려 아이의 성장과 행복에 방해만 된다. 차라리 이럴 땐 과감하게 친정, 시댁, 도우미 아주머니의 적극적 도움을 구하고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이가 어릴 때도 중요한 순간이지만 엄마인 나의 앞날에도 중요한 순간이 함께 찾아왔을 때 아이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생각보다는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나의 기회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이가 조금 커서 엄마는 왜 일하지 않냐고 물었을 때 너 때문에 그랬다는 말에도 아이는 더 이상 가슴으로 고마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말에 내심 서운해도 다시 나의 길을 개척하기엔 현실의 벽은 너무 높게 느껴진다.
나는 먼 친정 가까운 시댁을 가졌었지만 누군가에 부탁하는 게 싫어 아이의 육아를 모두 도맡았다. 감사하게도 야근이 없는 직장 덕에 퇴근과 동시에 어린이집으로 내달렸다. 아이들이 모두 하원하고 불 꺼진 어린이집에 유일하게 연장반인 우리 아이 신발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아이를 기다리면서 본 그 신발의 그림자가 유난히 새까맣고 쓸쓸해 보였다. 미안한 마음에 집에 돌아와 아이가 잠들 때까지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놀아주곤 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나는 아이 때문에 일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아이 역시 매일 늦는 엄마를 원망보다는 반가움으로 맞아주었고 그래서 우리는 더 애틋하게 재회했다.
고맙게도 어디가 다쳤다 아프다 이런 사소한 전화조차 오지 않게 아이는 늘 조심스러웠고 건강하게 지냈다.
나는 내가 일하고 싶으니 일한다고 늘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이가 이렇게나 도와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아이에게만 온전히 신경 쓸 수 없는 상황이 많기에 내심 미안한 마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되는 수많은 엄마들의 사례를 보면서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것이 분명 어렵지만 꼭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더불어 지금까지 여러 시련 속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생각했던 나 자신도 칭찬해 주고 싶었다.
인생이 마라톤이듯 아이를 기르는 것 역시 장기전이다.
엄마는 난생처음이라 아직은 서툴고 실수투성이지만 그래도 아이를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만큼은 그 누구에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아이 앞에서 먼저 내달리며 아이를 재촉하기보다 조용히 그 뒤를 따라가야겠다.
서로의 속도로 달리다가 숨이 차오를 때 서로 물 한잔씩 내어주며 나도 나의 길을 당당히 걸어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