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쉬고 있다는 것, 눈을 뜨고 있는 내게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어쩌면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억지로 의식하는 게 더욱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가 숨을 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의식할 때, 그때는 이미 그 경계를 느낄 새도 없이 이 생에서는 존재하지 않겠지...
죽음이란 늘 멀게만 느껴졌는데, 요 근래 불가피하게 마주한 이 단어는 내게 두렵고 낯선 감정보다는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인정과 이를 제대로 마주할 용기를 주었다. 두려움이라는 장막이 걷히고 나니 삶과 죽음의 경계가 조금 더 긍정적이고 또 의미 있게 보였다.
엊그제 86세의 일기를 끝으로 외할아버지가 영면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늘 호탕하고, 할 말은 다 하시는 그야말로 남자 중의 남자.
5분도 채 안 되는 침묵 속에서 늘 서둘러 식사를 마치셨고, 여전히 숟가락을 들고 있는 나를 보시고는여자가 왜 이렇게 밥을 오래 먹느냐며 볼멘소리를 하시곤 했던 대단히 가부장적이고 고지식하기도 했던 분이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과 도시를 넘나들며 공부를 하고 취직을 하면서 일 년 한두 번의 형식적인 명절을 제외하곤 할아버지를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그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행사마저도 바쁘고 일이 있는 날이면 빼먹기 일쑤였으니까.
결혼을 한다며 남편을 처음 소개했을 때, 1시간을 넘게 설교를 하시던 그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결론은 나한테 잘하라는 말이셨지만,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젊었을 때부터 결혼 그리고 우리 엄마가 나를 낳으며 고생한 추억까지 모두 소환하셨다. 그때 그 오랜 말씀을 무릎 꿇으며 긴장하며 듣고 있던 지금의 남편은 다리에 쥐가 났었고, 우리 모두 긴장 풀라며 웃었던 그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결혼하고, 일하고, 육아하느라 내 인생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는 사이 오랜만에 찾아뵌 할아버지는 많이 야위어 계셨고 기력도 없으셨다. 그 기억조차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요 근래는 찾아뵙지도 못했다.
여전히 정신없고 평범한 어느 주말 저녁, 동생으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이었다.
주말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뵌 엄마 아빠는 이미 그 마지막을 예감하셨지만, 늘 바빴던 손녀에겐 할아버지와의 이별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할아버지를 찾아뵈러 가면 늘 한쪽 벽면에 배경처럼 걸려있던 사진이었는데,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으로 마주하니 느낌이 이상했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할아버지 그 존재 자체만으로 내겐 큰 의미였다는 것을 미처 전하지도 못한 채 보내드린 것만 같아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아직 가보지 않은 세계라 무섭고 두렵고 막연한 마음이지만,
왠지 그곳에서는 늘 건강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영원히 행복하실 것만 같다.
할아버지, 다음에도 우리 할아버지로 와주세요. 저도 이곳에서 열심히 살고 있을 테니까 하늘에서 잘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