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쩡 Jan 11. 2022

<타인의 집>

손원평 소설집 

 


작가의 삶을 막연히 동경하면서도 실상 그들의 글을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이 복잡한 세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떠다니는 정보들을 더 빨리 주워 담고 싶었던 마음으로 욕심내어 책을 읽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학이라는 장르를 그저 교과서에서 봄직한 키워드로 인식했으니 그 안에 담긴 진짜 삶에 다가가기 힘들었던 것이겠지요.


처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소설이라는 장르에 눈길이 잘 가지 않은 까닭은 제 좁은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소설은 실제 삶이 아닌 작가가 만들어낸 삶이라 실제와는 큰 괴리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세계가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임을 시간이 한참 지난 이후 깨달은 것이죠.




<아몬드>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장원평 작가님이 쓴 이 <타인의 집>이라는 소설집을 읽고는 마치 낯설고도 친숙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이 작가의 손끝에서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는데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책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지금의 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얼굴,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타인의 모습을 보며 ' 어쩌면 다른 누군가 역시 나를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겠구나 '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삶도 결코 제 현실이라는 공간의 테두리 안에서는 어느 곳이 되었든 한 번쯤은 겹치는 지점이 있겠지요.


<4월의 눈>, <괴물들>, <zip>이라는 작품에서는 각자 다양한 현실에 처한 부부들이 등장합니다.


<4월의 눈>에서는 이혼이 위기가 아닌 일상처럼 느껴지다가도 문득 기억 속 한편에 각인된 슬픈 과거가 소환되면 그들의 평화는 깨지고 또다시 이혼을 이야기하는 현실이 등장합니다. 요즈음은 이런 반복되는 고리를 끊고 본인만의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용기 있는 소위 돌싱들이 tv에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보니 새삼 ' 세상이 참 많이 변했구나 ' 하고 느낍니다.


<괴물들>에서는 세상의 시선과 주변의 부추김으로 힘겨운 난임시술 끝에 갖게 된 쌍둥이 아들들을 괴물로 묘사하는 가여운 여인을 보게 됩니다. 결국 남편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만 언젠가 아빠를 죽이겠다고 한 아들들의 메모가 그녀를 메아리처럼 따라다닙니다. 아이들은 그녀의 삶도 어쩌면 남편의 삶도 앗아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종해야만 하는 괴물이라고 표현하는 모습에 참으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zip>이라는 작품에서는 풋풋한 연인에서 부부가 된 이들이 집이라는 소중한 공간을 점차 빠져나갈 수 없는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끼는 여자의 시선을 따라갑니다. 아이들 때문에 이 결혼생활을 유지하지만 아이들이 점차 살길을 찾자 무시당했던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놈과 동시에 뜻밖의 남편의 죽음을 목도하고 말지요. 결혼은 축복이고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공감하며 풀어나가야 하는 끝없는 숙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리아드네 정원>, <타인의 집>, <상자 속의 남자>는 저출산, 고령화, 노인 혐오, 청년 주거, 청년 세대의 박탈감, 타인에 대한 무관심 등 우리 현실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너무나 현실적인 내용들이 소설이라는 옷을 입고 등장합니다. 저 등장인물이 내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기에 그 결말은 늘 열려 있지만 정해진 답도 없는 것 같습니다. 과연 알고서 가는 길이 모르고 가는 길보다 더 나을 것인지. 씁쓸하지만 계속 마주할 현실이기에 그 어떠한 답도 쉽게 내놓을 수 없죠.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는 보라라는 이름의 여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글을 쓰고 싶지만, 글을 쓸 명분과 소재가 없다고 여기는 나머지 그들에게 글의 영감을 주는 불행한 삶을 동경하게 되는 소녀. 그녀를 보면서 제 자신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도는 하고 싶지만 큰 동기가 없어 그저 그 주위만 맴돌고 주변의 시선만 의식하면서 누군가 끌어올려주기만을 바라는... 그래서 그녀가 마지막에 직접 쓴 글을 용기내어 올리고 당당하게 작가로 인정받는 모습에 약간의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삶이 평범하든 혹은 굴곡지든 결국 모든 판단과 결정은 제 스스로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성공한 삶은 아직 일지라도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배웠습니다. 




저에게 이 책은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 여운이 지속되는 책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이미 겪어 봤기에 공감하는 것들도 있고, 그 사람이 처한 시대에 지금 살고 있기에 공감하는 것들도 있고, 아직 오지 않은 세계지만 이대로 가다간 정말 올 것만 같은 세계이기에 조금 더 귀 기울여지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다양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쩌면 작가가 이 모든 이야기를 <타인의 집>이라는 동일한 제목 아래 엮어 놓은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우리 모두 살아있는 동안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과 감정을 이해하고 때로는 부딪치며 끝내는 살아내야만 하는 같은 시공간에 살고 있으니까요.





기억에 남는 글... 


- 영화는 말없이 운전을 했다. 왜 귀에는 덮개가 없을까. 

눈은 감아버리면 되고 입은 닫아버리면 되고 숨은 턱 끝에 차오를 때까지 참아버리면 그만인데 귀는 왜 이렇게 속수무책인 걸까. 왜 의지로는, 자력으로는 단 한마디도 막아낼 수가 없는 거지. 

<zip> 中... 


" 가장 답답한 건 젊다고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에요. 젊음은 불필요한 껍데기 같아요. 

차라리 몸까지 늙었으면 좋겠어요. 남아 있는 희망도 없이 긴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건 절망보다 더한 고통이니까요. " 

<아리아드네 정원> 中... 


- 있잖아, 이미 일어나버린 일에 만약이란 없어. 

그건 책임지지 못할 꿈을 꾸는 거나 마찬가지야.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지. 어떻게든 누군가는 아프게 된다고. 형이 나를 바라봤다. 

- 반대로 말하면 누군가는 기쁘게 되는 거야. 

<상자 속의 남자> 中... 

매거진의 이전글 <작법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