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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쩡 Feb 18. 2022

<니클의 소년들>

by 콜슨 화이트헤드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어쩌면 누구나 알고 있는 진부한 표현일 수 있지만, 과거 아니 현재까지도 어떤 누군가는 그 당연한 권리를 위해 여전히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당연한 것이 인간으로서 대접받을 권리라면 어떨까요?


진화론의 이론에 기대어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누구보다 잘 적응해서 살아남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위대함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위대함이 잘못된 계급론으로 변질되어 인간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들어 내고, 태어나면서부터 이유도 알지도 못한 채 그저 부모도 그래 왔다는 이유로 반복된 어두운 삶의 환경에 놓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흑백 논리로 점철된 인종차별 문제는 평등이라는 당연한 권리로 조심스레 귀결되어가고 있지만, 과거 미국의 어느 시점에는 그 어느 때보다 극심했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백인도 흑인도 그리고 그 주변인 모두 누가 맞다고 판단하기보다 그저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웠으니까요.


저자가 비슷한 옛 사건의 기사를 재료 삼아 이렇게 훌륭한 한 편의 글로 지하 세계의 감춰진 비밀들을 낱낱이 폭로하는 점에서 느껴진 감정은 통쾌함보다는 아픔이었습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그들의 서사를 머릿속에서 움직이는 이미지로 쫓다 보면 으레 우리가 보는 평범한 해피엔딩이 아닌 애잔함과 슬픔 그리고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미안함이 남습니다.


도대체? 왜? 무엇이? 묻고 싶은 말을 문장으로조차 만들 수 없을 만큼 말문이 막혀버리는 소설 속 백인들의 행패를 보며 소설임을 알면서도 부글부글 끓는 감정들에 끝없이 '설마'라는 의심의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그저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을 동경하며 자신도 그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욕심을 냈던 소년 엘우드. 우연히 얻어 탄 차가 도난차로 밝혀지며 경찰에 연행되는 순간 그의 가혹한 운명은 시작됩니다. 그가 꾼 꿈은 분명 피부색과 상관없이 차별받지 않고 꿈꿀 수 있는 사회를 위한 작은 날갯짓이었는데 끝내 펴보지도 못한 채 짓밟히고 맙니다. 우리말로는 소년원에 가까운 감화원이자 학교라 포장된 무시무시한 그곳 니콜에서는 같은 소년 범죄자라도 흑인과 백인으로 철저하게 나누고 다른 공간, 다른 생활, 다른 대우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어쩌면 그들이 여기온 이유는 그들이 저지른 죄가 아니라 그들이 흑인이라는 근본적인 이유가 더 컸을지도 모릅니다. 글을 읽는 제삼자인 저의 머릿속에는 줄곧 '억울하다'라는 단어가 따라다니는데, 정작 그들의 서사 안에서는 이 단어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 현실을 그저 '당연하다'라고 받아들였던 것일까요?


시간이 흘러 누군가 그곳의 실상을 밝혀내기까지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고통죽음들.

그곳 니클은 이미 폐교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자행된 악의 기억이 영원히 사라질 수는 없었습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는 아마 지울 수 없는 평생의 상처로 남을 테니까요.




'아이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 그들을 처음부터 인종이 아닌 그저 순수한 눈망울의 아이로 봐주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들이 설령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들을 다시 올바르게 지도할 수는 없었을까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소설을 보면서 더 이상은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정체 모를 뜨거운 감정이 일렁이는 것도 같습니다.




사진 출처 : 인권 일러스트 ai 무료 다운로드 free Human rights illustration -  Urbanbr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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