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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Apr 28. 2022

多情이 병인가 보다



온다 온다 해 놓고선, 돌아보면 어느새 가고 없는 매정한 계절이 봄이다. 몽이가 바람과 함께 떠난 후 처음 맞는 봄, 이 계절의 화사함에 혼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식목일날 씨앗을 심었다. 화초 키우기는 젬병이라 괜히 아까운 꽃나무들 죽이지 않으리라 다짐한 지 몇 년만이다. 이번엔 죽여도(?) 큰 죄책감 없는 식용식물을 심자 싶었다. 여차하면 먹으면 되니까. 루꼴라, 바질, 파슬리, 방울토마토 씨앗을 사 와 나름 정성껏 심었더랬다. 저주받은 손에서 벗어나길 바라면서...


베란다에 내어놓고 하루에 두서너 번씩 들여다보며 할머니들처럼 녀석들과 대화를 했다. 몽이에게 하듯 말을 건넸더니 그새 잎이 하나 씩 얼굴을 내밀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꼬물거리며 이 놈 저놈 푸른 잎을 마구 내어 놓는다. 그간 내가 화초들을 키우지 못했던 것은 마음을 나누지 않아서였음을 이제야 안다. 예전처럼 생각날 때마다 들러 물 한 번씩 주는 게 아니고 화초들의 상태를 살피고 마음을 주니, 고맙게도 잘 자란다. 그나저나 너무 바특하게 자란 잎들은 솎아 주어야 할 텐데 차마 그러질 못하고 있다.




화초도 이럴진대 사람에게는 오죽하려나 싶다가도, 아니다란 생각에 고개를 흔든다. 화초와 사람을 어찌 비유할까. 사람이란 화초처럼 정을 준다고 금세 잎을 내어 놓지 않는다. 


화초와 달리 사람에게는 내가 준 만큼 돌려받길 원하다간 때로 낭패를 보기도 한다. 받기 위해 주는 건 아닐진대, 처음은 정말 순수한 마음인데 한번 두 번이 또 세 번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돌려받길 원한다, 아닌 척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이란 어찌나 간사한지.


잎과 잎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절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 세상에는 조금, 아주 조금 떨어져 있어야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몽이가 떠난 후 무엇에게 정 붙이지 않으려고 애쓰나 내가 또 어딜 갈까. 풍경소리, 바람, 봄볕, 화초들에게도 정을 붙이고 있으니.


多情이 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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