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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Apr 03. 2022

봄밤

                          


봄이란 계절을 맨 먼저 좋아했던 건
버스 창밖으로 내리쬐던 햇살이었다.
낯선 거리도 낯설게 보이지 않게
소프트 필름을 끼운 듯 뽀얗고,
모든 사물을 돋을새김 한 것처럼

보이게 했던 바로 그 햇살.        
그다음이 앙상했던 나뭇가지를 뚫고

돋아난 연두색의 새싹이었고,
누군가의 집 앞 화단서 맡은

라일락 향기였다.


늦은 밤, 약속했던 사람을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었는데

문득 어디선가 진한 향기가

풍겨오는 거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바로 머리 위에 보라색의

앙증맞은 꽃들이 봄밤의 정취를

물씬 더해 주었는데,
향기에 취하다 보니 기다리는

시간도 전혀 지루한 줄 몰랐다.

그래서 라일락은

모양새보다 향기를 더욱더

좋아하게 되는가 보다.


어디 라일락뿐인가.
개나리, 진달래, 벚꽃,

흔하디 흔한 것들 말고도
봄에는 여기저기 지천에서

많은 꽃들을 볼 수 있다.
이맘때 과수원에 가 본

사람들은 알 게다.
가을의 풍성함과는 또 다른 느낌.
이름 모를 앉은뱅이 야생화들이

마치 카펫처럼 아직 열매를

매달지 않은 벌거벗은 과수 아래

종종종 돋아난 풍경.

흔한 풍경일지 모르지만

가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귀하고도 귀한

봄 풍경 중 하나다.


허리를 낮추어야만 볼 수 있는

이 앉은뱅이 야생화들은
우리에게 겸손하라 속삭인다.


하나의 계절이 가면,

또 다른 계절이 찾아오는
계절의 순환을 보면서,
내 있을 자리와

내어 줄 자리를 가늠해 본다.
기분 좋은, 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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