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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Mar 22. 2022

카스텔라와 딸기 그리고 에스프레소

햇살이 아깝다. 

온 주위가 온화하다. 

일 년에 이런 날이 몇 번이 있을까. 

나는 오히려 눈을 감았다. 

그렇지만 그 환한 빛은 잔영으로 

내 눈 속에 남는다. 문득


이미 오랜 시간을 낭비하듯 살아왔지만 

아직 내 앞에도 시간이 있다.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순간 왠지 마음이 부푼다.

그 시간이 계속되는 한 나는 아직

꽤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무기력한 마음에 갑자기 의욕이 솟는다.

건너뛰려던 점심을 먹기로 한다.



평소엔 아메리카노를 마시지만

이런 날은 왠지 멋을 부리고 싶다.

에스프레소 바에서 마셔 봤던 것을 

기억해 냈다.

생크림을 휘핑해서 넣은

에스프레소 콘파냐.

어설프게 흉내 내어 본다.


그리고 설탕 알갱이가 가끔 씹히는

카스텔라 한쪽과 딸기 여섯 알.

신맛과 달콤함이 함께 도는 딸기에

고소한 생크림을 얹은 맛은 

언제나 옳은 맛이다.


누구는 해 놓은 것 없이 

나이만 먹어 어쩌냐는 듯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내심 기대하는 마음도 생긴다.

나이가 들면서 피는 조금 더 따뜻하고

눈빛은 더욱 깊어지지 않을까.

그것이 '생에 길들여지는 것'이라 해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그리고 

살 날보다 산 날이 많은 어느 시기엔

나도 누군가처럼 깜짝 놀랄

빼어남으로 빛날 수 있을는지도.


더 늦기 전, 

지금 주어진 삶 안에서

그 빛나는 일이 무엇인지 내다본다.

카스텔라와 달콤한 딸기, 

쌉쌀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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