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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Mar 08. 2022

March

시절이 시절인지라 어떨지 알 수는 없지만 머지않아 각양각색의 청첩장이 날아 들 3월. 삼 년은 거뜬히 입도록 다소 넉넉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물결치듯이 밖으로 나선다. 철 모르는 개나리가 겨울의 갑갑증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내밀고, 갑자기 화사해진 거리에선 두껍고 칙칙한 겨울 외투가 부끄럽다. 3월이 전쟁의 신 마르스에서 유래된 것처럼 겨우내 쉬고 있던 연애 전쟁에서 작전을 개시하기도 더없이 좋은 달이다.


내겐 3월이 좋기도 싫기도 한 달이다. 3월 2일이 생일인데 늘 내 생일날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항상 낯섦과 설렘 그 언저리에서 정신없이 지나가 버렸다. 어른이 된 후에도 별 의미 없는 축하의 말과 이어지는 술자리 말고 큰 이벤트의 기억도 없다. 지금 이 나이쯤 되고 보니 생일이라는 것이 내겐 더더욱 별 의미 없는 날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비혼 주의자가 되어 버린 나는 어쨌거나 남이 보기엔 외롭고 쓸쓸한 생일을 앞으로도 보내게 될 터이다.


공휴일인 삼일절날 동생이 롯데호텔에서 하루 호캉스를 하고 밥을 먹고 오자고 한다. 삼일절 축하인지 내 생일 축하인지 아무튼 귀차니즘의 발동을 누르고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롯데호텔에서 하루 자면서 내가 좋아하는 샴페인도 마시고, 서로 잠버릇이 달라서 새벽까지 좀 뒤척이긴 했지만 오랜만에 한방에서 잠을 잤다, 동생과 나는 이 나이까지 비혼일지도 몰랐고, 지금까지 둘이 한 집에서 살고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이 보면 딸들 잘 가르쳤다 뿌듯하실 만큼 큰 다툼 없이 잘 살아내고 있다.


두 살 터울이지만 단짝 친구처럼, 부모님을 함께 여읜 동지처럼, 총알 없는 세상이란 전쟁터에서 서로 의지할 전우처럼 두 여자는 조금 심심하지만 씩씩하게 늙어가고 있다.


3월 2일 롯데호텔 43층 다이닝에서 점심 먹으며 한 컷 : 3월 하늘이 참 좋네!



3월이 되니 아침마다 갈등한다. 어딘가 훌쩍 떠나볼까 하고. 허나 매번 실패한다. 마음뿐이지 몸은 어느새 생활의 문을 밀치고 있다. 3월의 하늘은 추스른 마음의 앞섶을 다시금 풀어헤치라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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