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 Jan 01. 2023

특별한 보통날의 다짐

2023년에 처음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비싼 카메라를

챙겨,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묻는

친구에게 "바보야, 그 태양은 어제의

태양이라구!" 하며 시니컬한 미소를 날렸다.


따뜻한 내 거실 테이블에서

몇 가지 안주를 곁들여 혼술을 하고

있는데 동생이 합류한다.

하이볼을 만들어 마시는 내게

비싼 위스키로 장난하지 말라는

동생의 비아냥을 견디며,

2022년이 가기 전에 얼른 해버리고

말아야 할 이야기들

2023년까지 끌고 갈 수 없는

내 이야기들을 게워냈다.

특별한 보통날인 12월 31일 밤은

자매애로 잘 마무리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런지

2023년 첫날 개운하게 눈을 떴다.

떡국 떡을 차가운 물에 담가놓고

육수를 인덕션에 올려놓고,

노트북을 열었더니 간밤의 어지러운

단어와 문장들이 화면에 뒤엉켜있다.


뭔가를 쓰고 싶었을 거다.

해서 무언가 쓰긴 썼는데 그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던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말 그대로 횡설수설이다.

초성끼리의 연결된 오타들,

중간중간 끊어진 문장,

맞춤법 틀린 단어들,

언어유희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어휘들...

김연승 시인처럼 다시 술을 마시고

이 글을 읽으면 알 수 있으려나.

저장도 되지 않은 글이니

백스페이스를 사정없이 눌러 지웠다.


꾸역꾸역  뭔가를 쓰면서

마음에 묵힌 이야기들을 게워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왠지 모를 찜찜함이, 어려운 사람에게

술주정을 하고 난 기분이 든다.

이 어지러운 문장들이 못난 나의

내면이려니 생각하니 나에 대한

측은지심을 면할 길이 없다.


새해부터는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지 말아야겠다.

덜 수 있는 것,

나눌 수 있는 것,

버릴 수 있는 것은,

덜고, 나누고, 버려야겠다 다짐한다.

특별한 보통날 1월 1일에...


매거진의 이전글 일 년은 열한 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