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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Feb 24. 2023

겨울눈(冬芽)​

봄꽃은 갑자기 피지 않는다

지난 늦가을 11월 말경, 첫눈이 온다는 절기인 '소설'에 봄꽃들이 활짝 피었다는 뉴스가 눈과 귀를  붙잡았다. 연속되는 이상 고온에 자연마저 헷갈렸던 모양이다.


누가 시작했을까. 봄이 왔다고 누가 잘못된 정보를 흘렸을까. 철새들은 리더가 길을 잘못 잡으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고도 하던데 식물들도 그렇구나 싶었다. 계절을 착각한 화면 속 봄꽃들이 이제 시작될 겨울을 어떻게 보낼지 측은했다. 돌아오는 진짜 봄에 한 번 더 꽃을 피우는 것인지, 아니면 새봄엔 꽃이 피지 않는 것인지, 꽃이 피지 않으면 열매도 달리지 않을 텐데... 그들을 바라보는 뭇사람들은 궁금증이 꼬리를 물 것이다.


식물은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자라나 잎을 다. 계절에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씨앗을 만든다. 모두가 아는 식물의 생장과정이다. 그러나 생강나무, 미선나무, 매화나 산수유, 벚나무, 개나리와 진달래 등 비교적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꽃이 먼저 핀다. 이파리하나 없는 횅댕그렁한 회색 가지에  꽃눈이 틔고 곧이어 꽃이 매달린다. 그 꽃이 떨어져야 비로소 잎이 돋기 때문에 다른 계절에 피는 꽃들보다 봄꽃들은 훨씬 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진정한 원톱 주인공들인 셈이다.


이렇게 온 세상을 환상으로 물들이는 봄꽃들이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아주 오랜 시간, 치밀한 계획을 세워 핀다. 나목에서 갑자기 꽃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늦여름부터 겨울 내내 준비를 해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울이 채 가시기도 전 어느 날 급히 꽃송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잎이 나기 전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늦여름부터 겨울눈을 만든다.


겨울눈은 나무들의 종류에 따라 땅속에서 겨울을 나는 것과 보드라운 털로 감싸거나 껍질에 밀랍 같은 기름을 바르는 등, 추위를 견디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낸다. 그렇게 추운 겨울을 견디고 다음 해 봄, 온도와 햇빛에 따라 꽃을 언제 피울지 시기를 결정한다. 그런데 온도에 민감한 겨울눈이 일정시간 따뜻한 온도가 지속되면 착각을 일으켜 겨울에도 더러 꽃을 피우기도 한단다. 안타깝지만 이런 경우 열매를 맺지 못한다. 식물로서는 수확 없는 한 해가 되는 것이다.


꽃가루받이를 해야 할 벌나비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을, 지난겨울 속 봄꽃들을 다시 생각한다. 누구보다 먼저 꽃을 만들어 열매를 잉태하고, 잎을 돋우어 그 열매의 성장을 도우리라 다짐했을 테다. 그런데 시기를 착각한 겨울눈이 꽃을 피우고 말았다. '꽃을 피웠는데 왜 이렇게 춥지?' 지난겨울 내내 절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무는 겨울눈의 좌절을 나이테에 새겨 또다시 다음 봄을 준비할 것이다.



한 편의 글을 보면 글쓴이가 얼마나 지난한 사유의 길을 걸었는지 알 수 있듯이, 끊임없이 생장하는 자연처럼, 겨울을 이겨내고 꽃 피우는 겨울눈처럼, 비록 열매 맺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욕망해던 시간과 노력의 본질은 헛되지 않는다. 우리가 그래야 하듯이, 봄꽃은 갑자기 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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